5명의 아티스트가 돌아본 2018년
[NYT터닝포인트]예술가 5명에게 질문했다. 자신의 작품 중 2018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을 고를 수 있는가? 그 작품은 2018년을 어떤 방식으로 상징하고 묘사하는가. 그들이 내놓은 답변은 다음과 같다.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조 버크먼
'무거운 넝마' (2018년작)
2018년은 '강간' '성폭력'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빼놓곤 설명할 수 없는 해다. 온라인 공간 여기저기에 등장한 단어들이다. 미국 전역의 언론 매체들도 관련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로 인해 올해 누군가는 모가지가 날아갔고, 누군가는 인생이 망가졌고,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너무 빨리 사라지거나 잔인하게 거짓말로 치부됐다.
올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류에 편승했다. 보복이 시도되기도 했고, 잘못된 보복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보복은 했지만 성과가 없는 경우도 있었던 해였다. 여성들이 세상은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아직 자신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을 깨달은 해였다. 사람들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라는 단어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고, 참담한 기시감을 느낀 해였다.
올해 나는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또한 그토록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결코 놀라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올해는 내가 새로운 도구를 배운 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잊어버린 오래된 것들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올해는 방아쇠의 해다. 상처를 감싸던 붕대가 풀린 해다. 올해는 니아 윌슨, 그리고 브렛 캐버노의 해다. (니아 윌슨은 올해 8월 캘리포니아주 한 지하철역에서 존 리 카월이라는 백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을 찔려 즉사한 흑인 여성이다. 브렛 캐버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대법관으로 과거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복수의 폭로가 나왔지만 FBI 조사와 상원의회 인준을 거쳐 대법관에 임명됐다-역주)
조 버크먼은 영국 태생의 종합 예술가다. 주로 페미니즘, 평등, 죽음 등에 대한 작품 활동을 한다.
알프레도 자르
'그림자' (2014년작)
네덜란드 사진기자 코언 베싱이 촬영한 이 사진은 인간의 비통한 감정을 가장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이 사진은 지난 1978년 니카라과 에스텔리에서 소모사 정권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을 당시 자매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보받는 순간을 찍은 장면이다. 베싱의 사진은 지난 2014년 내 설치미술 작품 '그림자'의 시작점이었다. '그림자'는 상징적인 이미지의 권력과 정치를 탐구하는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이민자 가족이 강제로 생이별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 사진을 떠올린다. 아기들을 엄마의 품에서 강제로 떼어내는 이야기를 읽을 때도 이 사진을 생각한다. 어린이들을 철창 안에 가두는 이야기를 읽을 때도 난 이 사진을 상기한다. 아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도 이 사진이 기억에 스친다.
젊은 시절 나는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 하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나는 르완다를 여행하면서 1994년 자행된 집단학살의 끔찍한 여파를 목격했다. 당시 100일 동안 약 100만명이 피살됐다. 나는 그런 잔인함과 흉측함을 보면서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죄 없는 이민자 아이들에게 행하는 일을 보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이 같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며 나는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서사시 '레퀴엠'(진혼곡)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오늘은 할 일이 아주 많아.
지난 기억을 도륙하고,
살아있는 내 영혼을 돌덩이로 바꾸고,
또다시 살아가라고 나 자신을 가르쳐야지.
알프레도 자르는 칠레 출신의 개념 예술가다. 자르의 작품은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정치적 분열 등 이슈에 비판을 제기한다. 최근에는 르완다 대학살과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다룬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조지 콘도
'페이스북' (2017~2018년작)
지난 2년간 내 작품은 파리, 아테네, 홍콩, 워싱턴 DC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전시됐다. 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미국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모두들 미국 정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미국은 가짜 뉴스 앞에 굴복한 것일까, 아니면 가짜뉴스가 진짜로 둔갑한 것일까?
1988년에 나는 내 예술 이론에 대해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인공적 사실주의'(Artificial Realism)라는 개념을 다뤘다. 인공적 사실주의는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예술적 기법이다. 나는 이 기법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인공적인 것을 표현함으로써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인공적 사실주의라는 개념은 이제 예술의 영역을 넘어 현실 세계의 정치판에까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개념은 진실이라는 영역에 핵폭발을 일으켰고, 결국 2018년에 진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소셜미디어는 정치판에 '인공적 사실주의'를 끌어들인 주범이 됐다. 내가 '페이스북'이라는 작품을 그린 이유는,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친구를 맺는 페이스북 문화 속에 내재된 거짓말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페이스북 문화는 자동으로 글을 올리는 봇(bot)과, 갈등을 유발하는 트롤과, 이질적인 정보들의 복합체 아니겠는가.
오늘날 정치는 우리에게 '공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타깝게도 '공포'는 잘 먹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우린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그저 두려움을 떨쳐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진실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떠올랐다. 예술가들은 정부에 붓끝을 겨누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라!"
조지 콘도는 미국인 시각 예술가다.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추상적·비현실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가상 인물이다. 콘도의 작품은 뉴욕 현대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등이 영구 소장하고 있다.
'손대지 마시오'(2018년작)
사바 칸
파키스탄에서는 신흥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노동 시장에 합류하는 여성의 숫자가 꾸준히 많아지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파키스탄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은 22%에 달한다.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다른 남아시아 이웃나라들보다는 비율이 낮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으로 여성이 집안일에만 종사하던 이 나라에선 극적인 변화다.
일터에 여성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도 차츰 높아졌다. 2010년 파키스탄에서는 직장 내 성추행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미투 운동(#MeToo, 나도 말한다-역주)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터 줬다. 오늘날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에 맞서고 있으며,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올해 초 파키스탄 라왈핀디 국립 예술대학의 이사 중 한 명은 성희롱 의혹에 휘말려 해임됐다. 그리고 4월에는 파키스탄의 유명 여배우이자 가수인 미샤 사피가 트위터를 통해 팝스타이자 발리우드 배우였던 남성 동료가 과거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내 작품은 우르두어 소설 표지에서 영감을 받아 구슬과 스팽글로 제작한 태피스트리다. 이 작품을 제작한 이유는 2018년까지도 파키스탄 여성들을 계속 굴복시키는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다. 이 태피스트리의 왼쪽 상단과 오른쪽 모서리에는 파키스탄 남성들이 입는 바지 '살와르' 두 벌이 배치돼 있다. 이 헐렁한 바지와 이 바지의 끈을 풀어주는 행위는 우르두어 문학과 파키스탄 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지배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조신한 여성을 상징하는 전통 스카프 '두파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명의 여성에게 둘러져 있다. 태피스트리 가운뎃 부분에 있는 엠블럼은 "내게 손대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르두어로는 "당신의 손을 당신 자신에게 두세요"라는 말이다
사바 칸은 시각 예술가로, 현대 파키스탄에서 사회계층·대중문화·종교의 상호작용을 다룬 작품 활동을 한다. 그는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머리 박물관 예술가 관저의 창립자이며, 파키스탄 국립 예술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예배하는 자유'(2018년작)'궁핍으로부터의 자유'(2018년작)
'공포로부터의 자유'(2018년작)
'표현의 자유'(2018년작)
행크 윌리스 토머스
미국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41년 연두교서에서 '인간에게 필수적인 4가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세계에 대한 시각을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4가지 자유란 언론의 자유, 신앙(종교)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2년 후 노먼 록웰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서 루스벨트가 말하는 4가지 자유를 여러 편의 유화로 그려냈다. 이 유화는 나중에 전쟁 채권을 판매하는 데 사용됐다.
나는 록웰이 그린 '4가지 자유'를 몇 년 전에 접했을 당시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과 작품 속에 내포된 가족·신앙·자유·안전 등 미국의 전통 가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내거 더 놀란 이유는 그림에서 뭔가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다.
로크웰의 시각에서는, 아니 어쩌면 루스벨트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미국적 가치들은 오로지 와스프(WASP), 즉 백인 앵글로색슨족 개신교도를 위한 것이었던 듯하다. 아메리카 원주민, 라틴계,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가톨릭신자, 유대인, 무슬림, 성소수자들은 이 '4가지 자유'를 그림자 속에서만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록웰의 그림을 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내 친구인 사진가 에밀리 슈어의 도움을 받아 그 의문에 답을 하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록웰의 그림을 사진으로 재생산했다. 원작 탄생 75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고 사회적 지위, 신앙,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대표하고 모든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가 믿는 미국을 표현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우리는 록웰의 작품을 여러 버전으로 재생산했고,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담아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사진 4장은 우리가 제작한 사진 80여 장 중 일부에 불과하다.
2018년 이 사진들이 보여주는 활기차고 다양한 미국의 모습은 록웰이 원작을 그린 이래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위협에 처해 있다. 지금 우리는 더 자유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은 여행과 같으며, 그 길은 언제나 공사 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행크 윌리스 토머스는 미국의 개념 예술가로 인종, 대중매체, 대중문화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그는 예술을 통해 시민의 정치 참여를 촉구하는 단체 '포 프리덤스'(For Freedoms)의 공동 창립자다. 2018년 포 프리덤스는 미국 중간선거에 앞서 활발한 정치 토론을 촉진하기 위해 전시회와 타운홀 이벤트를 열고 예술가들이 제작한 빌보드를 미국 전역에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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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19'가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화합의 시대로 가는 항해: 가치와 질서의 재편성'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