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저항하자"…전세계 '여성의 날' 시위 이어져

美 '여성이 없는날' 총파업…여성 하원의원들 집단퇴장
아일랜드 낙태금지법 반대행진…유럽 연대 시위도

8일(현지시간)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뉴욕 트럼프타워 인근에서 시위대가 붉은 옷을 입고 '여성이 없는 날' 총파업을 벌였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손미혜 기자 = 전 세계에서 8일(현지시간) 여성의 날을 맞아 여권 신장을 호소하는 행진·파업 등이 일제히 열렸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여성의 행진'(Women's March)을 통해 성평등, 동등임금, 가정폭력, 낙태, 이민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표출했던 이들이 '여성이 없는 날'(A Day Without a Woman)을 내세워 총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직장에 나가지 않거나, 여성·소수자가 운영하는 기업이 아닐 경우 쇼핑을 하지 않고 붉은 옷을 입고 연대를 표해달라고 호소했다. 남성들에게도 육아·집안일을 전담하고, 육아휴직 또는 근무유연제 등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 트럼프타워 앞에서는 붉은색 옷과 모자 등을 입은 약 2000명의 시위대가 모여 "계속 저항하자"고 소리쳤으며, 워싱턴 DC의 백악관 라피엣공원에서도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트럼프 대통령이 낙태를 지지하는 해외 비영리단체 원조를 끊은 데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여성의 행진' 당시 워싱턴 DC를 물들였던 분홍색 모자 '푸시 햇'(pussy hats)도 찾아볼 수 있었다.

로이스 프랑켈(플로리다), 캐서린 클라크(매사추세츠), 바버라 리(캘리포니아), 브렌다 로런스(미시간) 등 10여명의 미국 민주당 여성 하원의원들도 '여성이 없는 날' 파업에 대한 지지를 표하며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 시위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사람들이 '여성이 없는 날' 총파업에 동참했다. "크게 소리치자". ⓒ AFP=뉴스1

포춘에 따르면 프랑켈 의원은 성명에서 "나는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중요한 경제력을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수백만 여성들과 함께하겠다"며 "여성·젠더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 일상적인 업무나 경제활동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켈 의원은 "민주당은 의회에서도 낙태 지원단체 가족계획연맹의 지원금을 중단하려는 공화당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ACA) 폐지에 강하게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 DC 근교 알렉산드라에서는 여성의 날 시위 참여를 요구하는 교사들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이날 하루 전체 공립학교를 폐쇄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헬렌 로이드 알렉산드라 공립학교 홍보국장에 따르면 전체 교사 1400명 가운데 300여명이 휴가를 요구했다. 한 지구 내 공립학교가 전체 휴교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미국뿐 아니라 아일랜드와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도 여성의 날을 맞아 시위가 벌어졌다.

아일랜드에서는 낙태 금지법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여성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파업을 벌였고, 런던과 암스테르담 등지에서도 아일랜드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연대시위를 벌였다.

폴란드에서는 여성폭력에 저항하고 성평등을 호소하는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은 6명의 여성 승무원만으로 이뤄진 여객기가 여성의 날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위해 하늘을 날았다. 루프트한자항공 내 여성 파일럿은 전체 6%에 불과하다.

스웨덴에서는 한 여성축구팀이 유니폼 등에 적힌 이름을 여성을 지지하는 문구로 바꾸는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스웨덴 여성"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축구팀은 밝혔다.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8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 모인 수만명의 시위대. ⓒ AFP=뉴스1

러시아에서 올해 여성의 날은 2월혁명 100주년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1917년 3월8일(당시 율리우스력 2월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식량 배급 개선을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는 혁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니콜라이 2세 황제가 폐위됐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1만여명의 여성들이 이스탄불 거리를 점령하고 여성폭력 근절을 외치며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고 호소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호주 멜버른 등지에서도 성평등을 소리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전날 성명에서 "여성의 권리를 거부하는 건 그 자체로 나쁠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한다"며 "성평등은 공동체와 사회, 경제가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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