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美대선] 능력갖춘 '비호감' vs 예측불가 '금수저'

민주 공화 양당 후보 확정 힐러리 클린턴·도널드 트럼프 맞대결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지난 2월 1일 미 아이오와에서 시작한 미 대통령선거 각당의 경선 레이스가 7일(현지 시간)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70)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8)은 이날 후보자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을 각각 달성하며 공화·민주 양당 후보로 등극했다. 출생 환경부터, 성격, 취향, 가치관이 모두 다른 두 후보의 면면을 짚어봤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7일(현지시간) 지지자들을 향해 활짝 웃고 있다. ⓒ AFP=뉴스1

◇과거엔 공화당 열렬 지지자

미 정계는 오랜 시간 클린턴의 대선 후보, 나아가 당선 가능성을 예측했다.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치면서 미 정계를 흔든 주요 정치인으로 활약한 그에게는 "앨 고어(부통령) 이래 가장 자격있는 대통령 후보"(롤링스톤)란 평가가 따라붙었다.

클린턴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1947년 10월 26일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감리교를 믿는 중산층 부부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휴 로드햄은 당시 작은 섬유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클린턴은 공화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열일곱살이던 1964년에는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선거 캠프에서 자원봉사했고 웰즐리대학교에 입학해선 학생회 '젊은 공화당원'의 회장을 맡았다.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학창시절 선생님이 추천한 보수주의 고전 '보수주의자의 양심'(1960·배리 골드워터作)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베트남전쟁과 흑인인권운동이 미 전역을 휩쓸면서 반전과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클린턴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클린턴은 웰즐리 대학 졸업식에서 졸업 당사자로서 역대 처음 연설대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연설이 끝나고 장장 7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연설에서 클린턴은 "지도자들은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이 돼야 한다"면서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밝혔다.

◇능력은 인정, 호감형은 글쎄

1988~1991년 4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변호인 100명 안에 선정되기도 한 클린턴은 1993년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둘은 예일대 로스쿨 재학중 만나 1975년 결혼했다.

1976년 신혼시절 힐러리와 빌 클린턴ⓒ News1

BBC에 따르면 클린턴 부부의 학창 시절 친구인 세일라 브론프만은 인터뷰에서 "힐러리가 대선에 출마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은 늘 힐러리가 빌보다 똑똑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유능한 변호사 출신이었던 힐러리는 역대 퍼스트레이디보다 훨씬 더 깊게 정치 전반에 개입했다.

힐러리의 능력을 인정해 남편 빌은 국가건강보험개혁 테스크포스의 수장을 맡겼다. 이후 힐러리는 '힐러리케어'라 불리는 개혁안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작성된 개혁안은 의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으나 향후 오바마케어의 밑거름이 됐다.

빌 클린턴의 재임기간, 대통령보다 더 높은 지지를 얻은 클린턴은 이후 2000년 상원의원(뉴욕)에 선출되며 자신만의 정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첫 도전한 미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후보에 패하며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8년만인 2016년 대선 경선에서는 마침내 미 정치권의 두터운 유리천장을 깨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후보의 영예를 안았으나 그의 남은 도전은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막말 선동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 대선후보의 쇼맨십에 가려 첫 여성후보라는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작아보인다. 탁월한 능력은 인정받았으나 대통령으로서 대중에 받는 지지는 견고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따를 수 있으나 클린턴의 경력 외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의 '신비주의'를 문제로 지적했다. 신문은 "힐러리 클린턴의 취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나"라고 반문하며 "클린턴에 대해 사람들이 말할 때는 직업적 영역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클린턴의 '인기없음'은 워커홀릭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 감정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클린턴에 대한 사생활은 극도로 제한적으로 노출됐다. 클린턴 캠프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클린턴과 실제 친분을 쌓고 있는 지인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CNN도 이메일 스캔들, 월가와의 유착관계로 사람들이 클린턴에 대해 느끼는 불신과 더불어 일종의 '신비주의'를 클린턴의 약점으로 꼽았다.

남편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로 정국이 뜨거웠던 때도 클린턴은 CNN의 '60분'과 인터뷰에서 빌과 함께 출연해 남편을 두둔하고 상대 여성과 공화당만을 비판했다.

정치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처사일수 있으나 대중에게는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 AFP=뉴스1

◇'금수저'이자 주도면밀한 사업가

트럼프는 전형적인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미국판 '금수저'다. 트럼프는 1946년 뉴욕시 퀸스에서 독일계 부동산 투자자이자 자선업자인 아버지와 영국 스코틀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의 집은 방 23개, 화장실 9개를 갖추고 기사와 가정부가 상주하는 손꼽히는 갑부였다.

매우 풍족한 생활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트럼프에게 돈의 가치와 일하는 삶의 중요성을 늘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향후 '일중독'처럼 일하는 트럼프를 두고 사람들은 아버지 프레드를 닮았다고 말했다.

1968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학부)을 졸업한 후 트럼프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 71년 경영권을 전격 위임받았다. 회사 이름도 이 때 '트럼프기업'으로 변경했다. 맨해튼으로 주거지를 옮겨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유명 인사들과 교류를 맺으며 인적 자산을 쌓았다.

부동산 사업이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1982년 뉴욕에 트럼프타워를 세웠다. 핑크색 대리석과 대형 분수대를 갖춘 58층 호화 빌딩을 설립하면서 트럼프는 전 세계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카지노 사업을 벌이고 호텔 체인 할리데이인을 인수하는 등 분야를 넓히며 돈을 긁어모았다.

◇솔직함 빙자한 극단 막말, 발목 잡을 듯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건 2004년부터 10여년간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면서다. 이 방송은 트럼프 계열 회사의 인턴십을 얻기 위해 출연자들이 경쟁을 벌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호스트를 맡은 트럼프는 '너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오랜 시간 리얼리티쇼에 출연한 노하우가 쌓여 대선 경선 과정에서 언론 대응에 뛰어났던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하나로 꼽자면 자기 표현 능력일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껏 자신을 포장할 줄 아는 능력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산은 100억 달러(11조원)로 주장하고 있지만 미 경제지 포브스는 그보다 한참 적은 40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는 무슬림 입국 금지,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 같은 노이즈 마케팅은 역설적으로 트럼프 지지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와 그의 세번째 부인 멜라니아. ⓒ AFP=뉴스1 ⓒ News1

하지만 트럼프의 허풍과 극단적 언행이 그의 대선 가도에 발목을 잡는 양날의 칼로 다가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CNN은 "트럼프는 예측불가하고 변덕스러우며 백악관에 입성해선 무엇을 어떻게 할지 감을 못잡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트럼프대학 판결을 맡은 멕시코계 판사를 공격했던 것을 언급하며 "그가 헌법안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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