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갱단 살해 누명…10년 억울한 옥살이' 이철수씨 사망
- 정이나 기자
(샌프란시스코 로이터=뉴스1) 정이나 기자 =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갱단 조직원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철수(사진) 씨가 별세했다. 향년 62세.
이씨의 가족 측 지인인 도리스 야마사키에 따르면 이씨는 소화계통에 생긴 합병증으로 인해 2일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매리 병원에서 사망했다.
1964년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이씨는 1973년(당시 21세)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갱단 조직원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당시 자신이 머물던 호텔로 들어가다 체포됐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 3명이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다.
이씨는 1977년 수감생활 도중 백인 갱단 출신인 동료 수감자 모리슨 니덤과 교도소에서 싸우다 그를 살해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이씨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당시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의 이경원 기자가 이른바 '이철수 사건'에 관심을 갖고 집중 취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경원 기자는 이씨에 대해 100여건이 넘는 기사를 보도해 국내외에 널리 알렸고 '이철수 사건'은 미국 내 한인들을 비롯해 전체 아시아계 미국인 지역사회가 움직이는 계기가 됐다.
1977년 니덤 살해사건에서 이씨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단은 이씨가 1973년 차이나타운 갱단 조직원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정황을 발견했다.
아시아인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구명운동과 변호인단의 노력 끝에 1982년 9월3일 샌프란시스코카운티 고등법원 배심원단은 이씨가 무죄라고 평결했다.
이어 이씨는 1983년 3월28일 샌호아킨법원에서 신나치주의자인 니덤의 위협에 맞선 자기방어가 인정돼 석방 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그해 8월 자유의 몸이 됐다.
이씨의 구명운동에 동참했던 그랜트 딘은 "그가 천사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사형선고를 받을만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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