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만나기 전 푸틴과 결속 다진 시진핑…"세계 다극화" 강조

석 달 만에 다시 만난 중러 정상…밀착 행보 가속
中권력서열 6위 딩쉐샹도 러시아行…실질협력 이어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31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6.08.31. ⓒ AFP=뉴스1 ⓒ AFP=뉴스1

(베이징=뉴스1) 노민호 특파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이달 하순 정상회담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중러 간 '전략적 밀착'을 과시했다.

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31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만나 양국 관계와 국제·지역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지난 5월 푸틴 대통령의 방중 이후 석 달 만의 재회다. 당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찾은 뒤 푸틴 대통령이 방중했다면,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러 정상이 먼저 마주 앉은 것이다.

시 주석은 이날 '세계 다극화'를 강조했다. 그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과 예측하기 어려운 요인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며 "SCO는 지역 안정을 수호하고 역내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러시아를 포함한 각국과 함께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이끌고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를 추진하는 역량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도 "러중 관계는 이미 국가 간 관계의 모범이 됐다"고 화답했다. 이어 중국과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고 무역·에너지·산업·교통·과학기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엔과 브릭스(BRICS),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무대에서도 중국과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중러 정상은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차별화된 '다극화된 세계'를 강조하며 국제질서를 둘러싼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닿아 있음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달 24일로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미중은 정상 간 소통 동력을 이어가면서도 통상과 첨단기술, 산업정책 등을 둘러싼 구조적인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와 산업 보조금 문제를 압박하는 한편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을 둘러싼 대중 견제도 이어가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8월 30일(현지시간) G20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가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G20 회원국들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무역장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미중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화와 견제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과 먼저 만나 전략적 공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러 정상이 '다극화된 세계'와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국제질서 구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의 전략적 결속은 향후 미중 정상외교와 맞물려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1일(현지시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앞두고 비슈케크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6.8.31. ⓒ AFP=뉴스1
중러 정상 '밀착' 이어 中 최고위급 즉각 방러…투자·에너지 협력 속도

중러 정상 간 밀착 행보는 고위급 교류로도 이어진다.

중국 권력서열 6위인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는 오는 2일부터 4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한다. 중국이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파견하는 것은 이번 방러와 중러 간 실질협력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딩 부총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11회 동방경제포럼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중러 투자협력위원회 제13차 회의와 에너지협력위원회 제23차 회의, 제8회 중러 에너지 비즈니스 포럼 등을 소화한다. 러시아 측 고위급 인사와도 만날 예정이다.

정상 차원에서 양국 관계의 방향을 설정한 뒤 중국 최고위급 인사가 곧바로 러시아를 찾아 투자와 에너지 등 실질적인 협력을 이어가는 셈이다.

특히 양국 간 최대 에너지 현안 중 하나인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사업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러시아 크렘린궁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해당 사업이 양자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시베리아의 힘-2는 러시아 서시베리아 지역의 천연가스를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보내는 대규모 가스관 건설 사업이다. 계획대로 건설되면 연간 최대 5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할 수 있다.

서방의 제재로 유럽 시장이 크게 위축된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으로 가스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핵심 사업이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가스 공급 가격 등을 놓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이어져 왔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에너지 협력 확대에 뜻을 모았지만, 시베리아의 힘-2와 관련한 구체적인 돌파구는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상회담 결과에 관련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딩 부총리가 곧바로 러시아를 찾아 에너지협력위원회와 에너지 비즈니스 포럼을 잇달아 소화한다는 점에서 후속 협의 여부도 주목된다는 관측이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