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그립네"…中주룽지 별세에 '열린' 시대 향수 확산
'개혁가 前 총리' 중국인들 추모 물결…'통제·감시' 시진핑 체제에 은근한 비판
中 WTO 가입 등 시장경제化 주도…노동자 해고·빈부격차 그림자도
- 김우진 수습기자,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김우진 수습기자 이정환 기자 = 중국 경제의 개혁 개방을 주도한 주룽지 전 국무원 총리는 지난 1998년 국영 CCTV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초점방담'(焦点访谈) 제작진을 만나 자신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다면, 어떻게 인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라며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줬다고도 말했다. 중국공산당의 '긍정 보도 원칙'이 무조건 지켜질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지난 12일 주 전 총리가 향년 98세로 별세한 이후 위챗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주 전 총리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함께 마음껏 웃는 사진을 올리며 과거 지도자들에게서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일부 이용자들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듯한 내용이 담긴 의미심장한 추모 게시글을 작성했다. 한 투자은행가는 주룽지의 흑백 사진을 올리며 "나라가 일어서던 시절"이라 했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댓글로 "그 시절을 살았던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14일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중국인이 현 시진핑 체제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거 개혁개방 시대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 전 총리는 1998년 3월 국무원 총리에 취임한 뒤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주도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중국 경제 개혁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 언론을 "인민의 목소리"이자 "정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부르는 등 체제 내 비판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NYT는 "많은 중국인이 그 시대를 회상하면서 세계를 향해 더 폐쇄적이고, 비판에 덜 관용적이며, 앞날에 대한 자신감을 훨씬 더 떨어지는 오늘날의 중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은 주 전 총리 사망 이후 대중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정치인에 대한 추모가 현 지도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해 공개적인 논의를 철저히 통제하는 모습이다.
일부 소셜미디어에선 주 전 총리와 관련한 게시물이 삭제된 경우도 있었다. 웨이보나 샤오홍슈에서 '주룽지'를 검색하면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가 게재한 소수의 기사만 노출됐다. 일부 이용자는 주 전 총리 이름 대신 사진만 올리거나 '그 시절'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22년 장쩌민 전 국가주석 사망 당시에도 포털사이트 웨이보가 댓글을 제한하고 게시물을 삭제한 바 있다. 이듬해 시 주석 집권 이후 권력에서 밀려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가 서거했을 때도 그를 "인민을 위한 좋은 총리"라고 부른 댓글들이 검열되는 일이 있었다.
미국 기반의 중국 반체제 성향 매체 '에포크 타임스'는 공산당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시대 거침없는 지도자였던 그를 향한 애도가 자칫 체제 불만 표출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러한 향수가 주 전 총리가 추진했던 개혁의 부작용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재임 시절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으며, 시장 중심의 경제개혁이 빈부격차와 지역 격차를 확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황야성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3000만 명이 넘는 국가 부문 노동자들이 주 전 총리 재임 당시 일자리를 잃었다"며 "그는 왼손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른손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중국 정치평론가 루이형은 소셜미디어 엑스(X) 게시물을 통해 중국인들이 한때 개혁개방 시대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이 더 나은 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우리가 단지 또 다른 문화대혁명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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