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판검사보다 칩엔지니어"…FT "AI, 한국사회 성공공식 바꿔"
막대한 성과급에 성공 기준 변화…'연공서열 편향' 노동시장 심화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한국이 세계 최대 수혜국에 꼽히고 있지만 그 혜택은 일부에 집중되면서 사회적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진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은 수억 원의 성과급을 받으며 새로운 '승자'가 된 반면 청년층은 AI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고 노동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FT는 AI 반도체 호황이 한국 사회의 성공 공식과 노동시장을 동시에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쪽에서는 반도체 엔지니어가 의사와 변호사를 뛰어넘는 선망 직업으로 떠오른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AI가 초급 인력을 대체하면서 청년 고용이 위축되는 '두 개의 한국'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9일 '한국의 AI 칩 붐은 가진 자와 더 많이 가진 자를 갈라놓는다(South Korea's AI chip boom separates the haves from the have-mores)'는 제목의 기사에서 AI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한국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고 성공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막대한 반도체 성과급과 같은 보상이 한국 사회의 성공 기준까지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엔지니어와 공무원, 교수, 학부모, 심리학자 등을 인터뷰하며 AI 붐이 단순한 산업 호황을 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학생들은 의사와 변호사, 치과의사 같은 전문직을 목표로 했지만 AI 반도체 호황이 이런 성공 공식을 흔들고 있다고 FT는 평했다.
이러한 현상의 핵심이 단순한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카카오와 현대자동차 등에서도 성과급 확대 요구가 잇따르는 배경에도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FT는 봤다. 다만 FT는 반도체 업계 내부에서는 현재의 호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온다고 전했다.
FT는 8일자 칼럼에서는 AI의 혜택이 모든 한국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원래부터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기존 근로자와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청년층 간 격차가 큰 구조였는데 AI가 이런 단층선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FT가 인용한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1만1000개 감소한 반면 50대 고용은 20만9000개 증가했다. 한국은행 연구진은 '연공서열 편향적 기술 변화(seniority-biased technological change)'라고 규정했다.
AI는 교과서적 지식과 반복 업무에 의존하는 신입사원의 업무는 쉽게 대체하는 반면 경력을 통해 축적한 암묵지와 대인관계 능력이 필요한 고참 직원의 업무는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FT는 대기업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그 과실이 일부 대기업과 기존 근로자에게 집중될 경우 AI는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사회적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붐이 만든 막대한 부를 청년 채용과 직업훈련, 스타트업 육성 등으로 연결해 AI 시대의 새로운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FT는 진단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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