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韓, AI 붐·전쟁 최대 수혜국…반도체·조선·방산 3중 호황"
"中추격과 글로벌 경쟁 심화에 따른 끊임없는 불안이 혁신 원동력"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한국이 인공지능(AI) 패권 경쟁과 글로벌 재무장 흐름의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진단했다.
FT는 8일 '칩, 선박 그리고 무기(Chips, Ships and Gun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을 "글로벌 경제의 승자(global economic winner)"라고 평가했다.
AI 경쟁과 지정학적 갈등이 동시에 심화하면서 반도체와 조선, 방산 산업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3.6% 성장하며 직전 분기 1.6%에서 크게 반등했다. 수출은 38% 급증한 22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서울 소재 컨설팅업체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의 마이클 브린 대표는 FT에 "한국 경제의 여러 부문이 현재 매우 유리한 위치(sweet spot)에 있다"며 "성장의 엔진은 여전히 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현재 호황의 중심에 AI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 한국 수출은 사상 최대인 858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319억 달러를 차지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모두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20대 기업 반열에 올랐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초고압 변압기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효성중공업(298040)과 HD현대일렉트릭(267260), LS일렉트릭(010120)의 수주 잔고는 총 32조원에 달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반도체 수출 호황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7%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며 이란 전쟁에 따른 충격을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업 역시 대표적인 수혜 산업으로 꼽혔다. FT는 글로벌 조선시장이 사실상 중국과 한국의 양강 체제로 재편됐으며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한국 조선업체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올해 들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6척을 수주했다. 지난해 연간 수주량인 7척을 이미 두 배 이상 넘어섰다. 삼성중공업(010140)과 한화오션(042660), HD한국조선해양(009540) 등 국내 조선 3사는 올해 들어 5월 중순까지 총 191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방산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장기화의 수혜를 보고 있다. 한국은 올해 페루와 노르웨이,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무기를 수출했고 폴란드와는 전투기와 전차, 로켓 등을 포함한 65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방산업계 수주 잔고는 1년 새 24% 늘어난 113조 3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FT는 현재의 호황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은 저가 중국산 제품과 높은 에너지 가격에 압박받고 있으며, 중소기업들도 인건비와 전기요금 부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이 저가 제조업 국가에서 첨단 기술 강국으로 변모하면서 한국 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김영한 교수는 FT에 "반도체를 제외하면 한국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비교 열위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FT는 이러한 위기감 자체가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한 금융인은 FT에 "반영구적인 불안(semi-permanent sense of paranoia)이 오랫동안 한국 산업을 움직여온 추진력(driving impetus)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멈춰 서는 순간이 곧 경제의 정점"이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하고, 계속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추격과 글로벌 경쟁 속에서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혁신과 투자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힘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AI와 안보 경쟁이 만들어낸 현재의 호황은 한국 경제에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도전의 시작일 수 있다고 FT는 평가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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