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과거를 떠나보내야 하는 中진출 K-기업
- 정은지 특파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2년 전 찾았던 중국 베이징 남부 경제기술개발구 이좡(亦庄)에 위치한 징둥 본사 전시관 한편에는 낡고 두꺼운 모니터와 오래된 컴퓨터 본체 한 대가 전시돼 있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한 징둥그룹 창업자 류창둥이 1998년 창업 당시 베이징 중관춘의 한 전자상가에서 비디오와 디스크를 팔던 1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었다.
특히 그 낡은 컴퓨터의 두툼한 모니터에는 삼성 로고가, 직사각형 컴퓨터 본체의 CD 삽입구에는 LG 로고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던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만 해도 삼성과 LG 같은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시장에 안착해 있었다. 단순한 중국 진출 해외 외국 기업이 아닌, 중국의 성장 흐름에 함께 올라타며 성공을 공유하는 모델에 가까웠던 시기였다.
하지만 약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 내 삼성과 LG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한때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이제 중국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내 생활가전과 TV 판매 중단을 결정하기도 했다.
과거 삼성전자의 가전을 위탁 생산하던 하이얼과 같은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자, 삼성전자가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대신 모바일·반도체·의료기기 등 일부 사업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런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 주도로 열리는 박람회나 산업 전시회를 찾은 기업인들과 관람객들은 이제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시장에서 삼성을 밀어낸 하이얼이나 하이센스의 본사 전시관만 둘러봐도 기술력을 앞세운 가전 제품들을 전면에 배치해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문득 약 20년 전 베이징 거리에서 손짓으로 택시를 잡던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현대차가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해 생산한 소나타와 엘란트라는 베이징 택시로도 널리 보급됐다. 일본·독일 브랜드 합작 택시와 비교해도 외관은 훨씬 세련됐고 승차감도 뛰어났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일부러 소나타 택시를 기다리곤 했다.
최근 베이징 도로에서 현대차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2017년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라는 외교적 변수도 있었지만, 빠르게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된 중국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는 냉정한 진단도 나왔다.
현대차는 지난 4월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 시장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 V'를 공개했다. 중국 기업 CATL과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고, 모멘타와 지능형 주행 시스템을 협력 개발하는 등 현지화 전략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디자인 역시 중국 현지 디자이너가 맡았다.
현대차가 중국형 모델을 앞세워 다시 도전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지금 중국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순히 '한국 기업의 실패'로만 볼 일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던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중국 산업 자체가 빠르게 고도화됐고,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우대 정책으로 인해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해소되지 않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최근 중국 시장 재도전에 나선 현대차, 중국 사업 구조를 과감히 재편한 삼성전자는 물론 중국 내 많은 한국 기업들이 몰라보게 달라진 중국 시장을 마주하며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초기의 성공 추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전략을 고수하다가는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변화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달라진 중국 시장을 인정하고 현실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두려운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하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ejj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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