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아닌 모든 물자 부족 시대…韓 쓰레기봉투,日 투석용 튜브 '비상'
전쟁 한달째, 나프타·플라스틱 수지 등 부족이 아시아 강타
의류·생수병·화장품까지 타격…"미국으로도 위기 확산"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이란 전쟁으로 인한 석유·석유화학 원료 공급 차질이 세계의 거의 모든 물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료 가격 폭등은 물론 신발, 의류, 비닐봉지, 의료품 등 일상용품 제조에 필요한 석유화학 제품 공급이 위태로운데,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운송에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가 직격탄을 맞았다.
5일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쓰레기봉투 사재기가 발생했고 대만 쌀 농가는 진공 포장용 봉투를 구할 수 없어 쌀 가격을 인상해야 할 형편이다. 특히 의료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점은 환자들의 생명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만성 신부전 환자들이 혈액투석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의료용 튜브 부족으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장갑 제조업체들은 고무 라텍스 제조에 필요한 석유 원료 부족으로 의료용 장갑을 전 세계에 공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업체들은 고육지책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태국의 대형 포장재 도매업체는 음식점과 배달업체가 쓰는 투명 셀로판 봉지 가격을 10% 인상했다. 인도에서는 생수병 뚜껑 가격이 전쟁 이후 네 배나 뛰었다. 한국의 라면 업체 농심은 포장재 공급업체가 한 달 치 재고만 남아 있다고 밝혀 즉석라면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장품처럼 포장재 의존도가 높은 소비재가 가장 먼저 부족 사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중국 저장성 하이닝의 한 폴리에스터 제조업체는 원료 가격이 50% 급등해 신규 주문을 중단한 상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포장재 가격이 두 배로 오르자, 기업들이 포장 두께를 줄이고 있으며, 일부는 종이·유리·알루미늄·재활용 플라스틱 같은 대체재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내구성·안전 규정·생산라인 전환 문제로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동은 세계 나프타의 17%, 플라스틱 수지의 30%, 비료 원료인 황의 45%, 반도체·의료·항공에 쓰이는 헬륨의 33%를 공급한다. 이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는 콘돔 제조업체들이 포장재와 실리콘 오일, 암모니아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호소하고, 미국 농가의 비료 가격은 이미 3분의 1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때처럼 충격이 단계적으로 퍼지는 ‘순차적 공급 붕괴’가 서쪽으로 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각국은 비축유 방출, 연료 가격 상한제, 근로 시간 단축 등으로 대응했지만, 4월부터는 전쟁 이전에 출발한 마지막 원유 선적분이 도착하면서 공급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JP모건은 “문제의 초점이 가격에서 물리적 부족으로 옮겨갔다”며 “아시아는 더 이상 예방 단계가 아니라 실제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내일 정상화되더라도 플라스틱 산업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최소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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