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일 싸움에 어부지리 같은 건 없다
- 정은지 특파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지난 7월 어느 날 한국인 지인과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평소 중국 택시에서는 택시 기사와 '스몰 톡'을 할 일이 거의 없는데, 이날 기사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던 우리에게 대뜸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어 왔다. "한국인"이라고 짧게 답하자 그는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택시에 태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이랬다.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2차대전) 승리 80주년 행사(9월 3일)를 앞두고 중국 내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고, 이를 반영하듯 반일 색채가 담긴 영화의 개봉이 잇따랐었다.
중국 체제의 특성 때문이라고는 해도 정부 시책을 받아들이는 민간 영역의 적극성이 이 정도까지인 것이 기억에 남았다.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중·일 관계는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던 중·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1월 7일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 행사 가능' 발언을 한 이후다.
대만 문제를 핵심 이익 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삼고 있는 중국이 즉각 민감하게 반응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다시 금지했다.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리자, 항공사와 여행사들은 일본행 항공편 운항을 줄이거나 여행 상품을 홈페이지에서 내리며 즉각 보조를 맞췄다.
나아가 일본 연예인들의 중국 내 공연은 약속이나 한 듯 연쇄적으로 취소됐고 예정됐던 일본 영화의 개봉도 미뤄졌다.
중국은 유일한 해결책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철회라며 대일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중·일 관계 회복이 수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중국은 지난 2012년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선언하자 대대적인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전개했다. 중국 내에선 일본 자동차 파손과 같은 과격한 행위도 잇따랐었다.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벌이면서 우리가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놓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사태로 바닥을 찍었던 한중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에 이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11년 만의 국빈 방한, 양국의 상호 무비자 관광 허용 등 훈풍이 불고 있다. 일본 여행을 계획했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중·일 갈등 사태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니다. 외교란 것이 늘 그렇지만, 특히 동북아 한·중·일 3국은 역사적으로 갈등과 긴장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지금은 일본과 중국이 충돌하고 있지만, 내일은 한국과 중국이 충돌하고, 모레는 한국과 일본이 얼굴을 붉힐 수 있다. 오늘의 섣부른 행동이 내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십상이다. 중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함께 한국을 때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주변국 갈등에서 우리의 자세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한반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혹시 이번 갈등이 극단적으로 발전할 경우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나 전략을 가늠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주변 강대국들이 충돌 과정에서 빼 드는 무기가 어떤 것들이고, 그 칼끝이 우리를 향할 경우 대비는 되어 있는지 조용히 점검해 볼 수도 있다. 중·일 갈등이 과거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 그 사이 양국의 처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반면교사를 삼을 만하다.
30일 주일 중국대사가 공개적으로 일본을 위협했듯 "오늘 중국은 더 이상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래저래 생각할 것이 많다. 가장 피해야 할 태도가 팔짱 끼고 남 일 보듯 하는 것이다.
ejj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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