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80주년 열병식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자세
- 정은지 특파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최근 베이징은 내달 3일 열리는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2차 대전) 승리 80주년 기념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중국 당국이 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한다고 공언한 만큼, 곳곳에서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중국 당국은 일찍이 이번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열을 하고 연설을 한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첨예해지는 미중 간 전략 경쟁에서 중국이 가진 군사적 야심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서기의 6년만의 방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석이 확인되며 북·중·러 3국 정상의 다자외교 가능성 등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8월 들어 베이징은 열병식 준비에 들어갔다. 톈안먼 인근을 통제하거나 폐쇄하고 일부 도로에서 임시 교통 통제를 실시했다. 당국은 시민들의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중 훈련 지역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하거나 리허설 시간을 밤 늦게 잡았다고 밝혔음에도 지난 3주간 겪었던 크고 작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도심에 바리게이트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주말 교통 통제에 나서기라도 하는 날엔 제복 경찰이 눈에 띄게 늘고 신분증 검사도 평소보다 엄격하게 진행된다.
당국이 톈안먼 인근 통제를 예고한 주말엔 지인과의 만남 일정도 조정해야 했다. 베이징에서 나고 자란 이 지인은 지하철역 기준 톈안먼역과 불과 3~4개역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저녁 6시 이후엔 이동이 불편할 것 같다'는 지인의 말에 약속 시간은 자연스럽게 점심으로 변동됐다. 점심을 먹은 이후에도 '저녁엔 차량 통제 등으로 이동이 불편할 수 있다'는 말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엔 여러명의 경찰을 아파트 인근에서 만났다며 아마 매주 주말엔 열병식 리허설로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전했다.
교통 통제 범위에 포함된 식당에선 예약을 취소당하기도 했다. 주말 저녁, 지인과의 약속을 위해 베이징 상무중심구(CBD) 지역의 식당을 예약했다. 베이징에만 3곳의 지점을 둔 식당은 수년간 미슐랭 식당에 선정된 유명 식당이다. 식당 방문을 3일정도 앞두고 식당으로부터 당일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열병식 기념행사 관련 준비가 그 이유였다.
주말 장사를 접어야 하는 식당들의 경제적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를 대하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너무 태연하다. "통제를 피해 집에 빨리 가면 된다"라거나 "식당은 많으니 영업을 하는 식당을 가면 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베이징에선 다른 시기에도 종종 교통 통제가 벌어지는데, 시민들은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수년 전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영업 제한 등 조치가 취해졌을 때 반발한 자영업자들은 시위에 나섰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국가 운영 체제가 다르니 당연한 차이다.
베이징 시민들은 불편함을 묵묵히 감수하는 데에서 나아가 아예 이런 체제의 장점을 적극 발견해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열병식 리허설을 위한 교통 통제로 극심한 정체를 겪었던 날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년 소비가 침체되고 경제가 좋지 않지만 국가에서 대규모로 진행하는 열병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고 영광이다."
ejj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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