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中 기술굴기 이끈 '인재양성'도 놀랍다

정은지 베이징 특파원. ⓒ News1 박지혜 기자
정은지 베이징 특파원. ⓒ News1 박지혜 기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포닥(박사후 연구원)을 마치고 (대학 강단) 문을 두드렸을 때 양자 분야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중국에서 투자를 많이 하면서 칭화대로 오게 됐습니다."

양자컴퓨터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김기환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인스부르크대, 메릴랜드대를 거친 그는 2011년부터 칭화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김 교수의 언급은 중국이 꽤 오래 전부터 다른 국가들이 외면한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해 왔다는 뜻으로 들렸다. 현재 중국은 차세대 혁신 기술 핵심으로 떠오른 양자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할 정도에 위치에 올라있다.

최근 몇년간 중국이 일부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견줄 만한 수준의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는 부인할 수 없다. 국가 주도의 혁신 전략이 가장 큰 틀을 잡아 역할을 했고 특히 정부가 과학기술 인재를 적극 양성한 것이 주효했다.

매년 6월 중국 수능인 '가오카오'가 끝나고 점수가 공개되면 "장원은 반드시 칭화대·베이징대(칭베이)를 선택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올해 가오카오에서 톈진시 이과 장원을 차지한 3명은 모두 칭화대를, 그 중 1명은 이른바 천재 양성반인 '야오반' 진학을 결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명문 의대를 택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명문대인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들어가는 것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 수능을 보지 않고 '칭베이' 주요 학과에 입학하기도 하는데, 이 중 절반은 올림피아드 수상자거나 '강기계획(기초과학 강화 프로그램)' 등 별도 코스로 진학한 '찐천재'들이다.

각 지역의 두뇌들이 모인 대학에선 연구와 산업을 연계한 프로그램도 대거 실행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공부하다 중국으로 돌아온 인재들이 중국의 첨단기술 자립 프로젝트의 선봉에 섰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2년 향후 10년간 1만 명의 고급 인력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 '만인계획'을 추진했는데, 귀국을 선택한 인재들에게 생활 보조금과 연구 보조금 등을 통크게 제시했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인재를 유치하는 비중이 2021년 약 59%에서 2024년 41%로 감소했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김기환 교수는 물론 반도체 석학인 이우근 중국 칭화대 집적회로학원 교수도 올해 연이어 한국으로 돌아간다. 반도체 집적회로(IC)와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 전문가인 이우근 교수는 19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 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다. 동시에 칭화대의 '해외석학교수'를 겸직한다. 김기환 교수는 하반기 기초과학연구원(IBS)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들은 중국이 어떻게 인재를 육성하고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는지 직접 지켜본 증인이다. 이우근 교수와 김기환 교수가 귀국하게 되면 칭화대의 이공계 분야에서 한국인 교수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자리는 수십년간 중국 정부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결과물인 중국 인재들이 채우게 될 것이다.

최근 칭화대에 임용되는 교수 대다수는 국책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이나 중국공정원 원사급이라고 한다. 교수진의 '급'이 그정도로 향상됐다는 얘기다. 단순히 인구만 많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재도 많은 나라가 됐다.

한국은 어떤가. 여전히 뛰어난 학자들이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는 해외 대학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학계 관계자는 "일단 중국에서 해보고 안되면 한국으로 가면 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이 한국의 주요 산업을 위협하거나, 이미 뛰어넘은 분야는 한 둘이 아니다. 반도체나 배터리, 전기차,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바이오 등 한국의 미래를 책임 질 첨단산업을 위해 더 많은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인재 양성에 대한 걱정이 줄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고국으로 돌아온 인재들이 좌절하지 않고 대학을 비롯한 각계에서 역량을 발휘할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미 귀국했거나 귀국할 '수많은' 김 교수와 이 교수들이 해외에서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기를 빈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