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發 유조선 부족…"국제유가 내려도 기름값 안 떨어진다"

WSJ "사우디 송유관 피격에 호르무즈 일대 단거리 운송 늘어"
"전 세계 유조선 15% 오만 인근 몰려…VLCC 운임 사상 최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자료사진> 2018.12.21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이란 전쟁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우회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으로 초대형 유조선(VLCC)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국제유가가 떨어지더라도 휘발유·경유 등 최종 연료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초 사우디의 동서 송유관이 드론 공격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원유 수송이 다시 호르무즈 해협으로 몰려 전 세계 유조선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동서 송유관은 페르시아만에서 생산한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보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게 하는 사우디의 핵심 수송망이다. 이 송유관이 가동을 멈춤에 따라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페르시아만 라스타누라항 등 동부 수출항을 통한 선적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람코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여건 불안정을 이유로 걸프 내 항구에서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해협 밖 오만 인근까지 짧은 구간을 왕복한 뒤 다른 선박에 원유를 옮겨 싣는 선박 간 환적(STS) 이용 빈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이 과정에서 기존 장거리 원유 수송에 투입됐던 VLCC 상당수가 호르무즈 주변 단거리 운송에 묶여 전 세계적인 선박 부족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VLCC 약 900척 가운데 15%가량이 호르무즈 해협 오만 연안에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해상 물동량의 약 20%를 책임지던 역내 핵심 교역로였다. 그러나 올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에 돌입한 이란이 각국 유조선 등 선박의 이 해협 통항을 제한하면서 국제유가 상승을 불러왔고, 수출 운임과 보험료 등도 함께 뛰었다.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이달 초 페르시아만에서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는 VLCC의 하루 용선료는 사상 처음 100만 달러(약 14억 원)를 넘어섰다. WSJ는 "이는 배럴당 약 26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서 현재 원유 가격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사우디 국적 선박들이 홍해-수에즈 운하 대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가는 항로를 택하면서 운송 기간은 약 2주가 더 걸리고 선박 1척당 비용은 약 100만 달러가 더 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VLCC 운임 급등은 중동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해운 조사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이달 17일 기준 전 세계 VLCC의 하루 평균 운임은 65만 1107달러(약 9억 원)로 1주일 전과 비교해 약 2배 수준으로 올랐다. WSJ는 "서아프리카~중국 등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항로 운임도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향후 국제유가가 하락하더라도 유조선 부족과 높은 운임이 지속된다면 휘발유·경윳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강의하는 전 에너지 트레이더 아디 임시로비치도 "정유사에 중요한 것은 원유 자체 가격이 아니라 운송료를 포함한 실제 도착 가격"이라며 "주유소 가격엔 이 모든 비용이 포함되고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ys417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