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불길 휩싸인 사우디 '미스터 에브리싱'…美도 새 방위동맹도 뒷짐

빈살만, 이란·대리세력 사우디 전방위 압박에 최대 시험대
11월 선거 앞둔 트럼프 직접 개입 꺼려…'메카 협정'도 군사 대응 아직

지난해 11월 미 백악관에서 만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11.18. ⓒ 로이터=뉴스1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이란 전쟁의 불길에 휩쓸리면서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모든 것을 가진 막강한 권력자라는 의미)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최대 시험대에 들었다.

이란과 역내 대리 세력들이 사우디의 석유 기반 경제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지만, 사우디가 그동안 안보를 의존해 온 미국도 새로 방위 동맹을 맺은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다.

사우디 개혁 꿈꾸던 빈살만, '카슈끄지' 이후 최대 난제

16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은 이달 들어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페림 섬, 하니시 제도 등 전략적 요충지를 잇달아 장악했다. 최근에는 사우디 측이 후티 소행으로 지목한 메카 방향 드론 공격까지 발생했다. 후티는 메카를 겨냥했다는 사우디 측 주장을 부인했다.

사우디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후티 반군의 홍해 통제권 확대, 친이란 이라크 민병대의 사우디 육로 송유관 공격이 겹치면서 육·해상 원유 수송망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형국에 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의 원유 수출 역량 및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사우디를 세계적인 투자 허브로 발돋움시키려던 빈살만의 야심 찬 계획이 모두 위협받고 있다"며 빈살만이 2018년 '카슈끄지 사건'(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에 따른 서방과의 관계 악화) 이후 최대 시험대에 섰다고 보도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전쟁에 따른 수출 차질 등의 여파로 8월 일일 620만 배럴로 추락하며 3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빈살만은 2015년 아버지 살만 국왕의 즉위를 계기로 사우디 정치 전면에 등장한 이후 사우디 왕실 및 국가 운영 전반에서 빠르게 권력을 장악해 사실상 사우디의 실권자로 거듭났다.

그는 2015년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주도했지만 2022년 유엔 중재로 휴전이 성립된 후로는 예멘에서 발을 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동시에 국가개혁 '비전 2030'을 통해 사우디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정치·경제·사회·종교 등 국가 전 영역의 쇄신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닐 퀼리엄 연구원은 "빈살만 왕세자는 마땅한 선택지가 거의 없다"며 "이번 사태는 빈살만의 지도력은 물론 사우디 안보·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시험대"라고 진단했다.

예멘 수도 사나에서 열린 반사우디 시위의 후티 반군. (자료사진) 2026.7.31 ⓒ 로이터=뉴스1
트럼프, 직접 개입 거절…'메카 협정'도 군사 지원은 아직

빈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의 '비(非)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 지정받고, 미국과의 민간 핵협정 체결의 길까지 열었지만 현재로서 미국은 예멘 문제에 뒷짐을 지고 있다.

후티 공세 확대를 마주한 빈살만은 최근 미국에 후티 공습을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적 군사 행동을 거절하고 정보 공유와 목표물 설정 등 간접 지원만 가능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여파로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사우디를 위해 후티 반군을 상대로 또 다른 군사작전을 개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사우디와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이슬람 수니파 3개국이 지난 8월 체결한 '메카 공동 방위 협정'도 아직 실질적인 군사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메카 협정은 회원국 간 집단 방위 약속을 포함해 '이슬람판 나토'라고 불렸지만 후티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왕실 칙명만으로 협정을 비준할 수 있는 사우디와 달리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는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며 메카 동맹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련 사무국 설치 및 사무총장 선임으로 메카 협정 작동에 속도를 내고 있긴 하지만,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한 전력이 없는 3개국 군대가 상호 운용성을 확충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한 튀르키예 당국자는 사우디-후티 반군, 파키스탄-인도 분쟁 등 현존하는 갈등이 3개국 방위 동맹의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면서도 "메카 합의의 목적은 모든 분쟁에 대한 즉각적 해결책 제시라기 보다는 장기적 억지력 구축"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7일(현지시간) 사우디 메카에서 '메카 공동 방위 협정'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은 튀르키예 대통령실 제공. 2026.08.07 ⓒ 로이터=뉴스1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