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中에 원유 주고 무기·물자 교환…제재 피해 수조원대 거래"
美 감시망 피해 원유 대금 '크레딧' 전환…방공 장비 등 군수품까지 조달
페이퍼컴퍼니·SPV 동원한 비밀 결제망…美 해상 봉쇄로 지속 여부는 불투명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이란이 미국의 고강도 경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 비밀 물물교환 방식의 무역망을 구축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물자를 확보했다고 로이터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란 고위 소식통 2명과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중국에 원유를 공급한 대금을 현금으로 받지 않고, 중국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신용(크레딧)으로 전환해 경제 생명줄로 활용해 왔다고 전했다.
이란은 이 통로를 통해 의약품과 차량, 통신 장비 등 민간 물자를 사들였다.
지난 1년 사이에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대공 방어 장비 공급 계약에도 이 방식을 최소 한 차례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9월 유엔의 대이란 재래식 무기 금수 조치가 복원됐음에도 군수 물자 거래가 은밀히 이어진 셈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 역시 자국 은행과 기업을 미국의 2차 제재 위험에서 분리하면서 할인된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거래 구조는 국제 은행 결제망을 철저히 피해 설계됐다. 중국 국영 석유무역업체 주하이 전룽 측 매수인이 홍콩에 등록된 이란 국영석유회사(NIOC) 연계 기업과 원유 거래를 맺고, 중국 내 금융 주체인 '추신'(ChuXin)에 매달 수억 달러를 예치하는 방식이다.
추신이 처리한 원유 대금의 약 70%는 이란 내 인프라 건설 사업에 배정됐다. 나머지 자금은 물품 공급 대금을 결제하는 특수목적법인(SPV) 계좌로 들어갔다.
이 특수목적법인은 중국 상무부 대리 기업과 이란 중앙은행 연계 기업이 공동 관리했다. 이란 중앙은행이 자금 사용을 승인하면 중국 수출업체에 대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양국 기업이 국제 금융망에 직접 거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차단벽을 세운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이 특수목적법인을 거쳐 간 자금만 20억~25억 달러(약 2조 7000억~3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메커니즘은 적어도 2021년부터 가동됐으며, 초기에는 코로나19 백신과 의약품 공급에 쓰였다.
다만 거래망의 실체를 추적하기는 어렵다. 추신이라는 금융기관은 중국 공식 기업 등록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 소식통은 추신이 실제 금융기관이 아니라 스프레드시트상에만 존재하는 가공의 정산 장치일 수 있다고 전했다. 홍콩에 등록된 거래 대행 기업들 또한 비서대행업체 주소지만 등록돼 있어 소유 구조와 실체가 불투명하다.
중국은 2025년 이란 해상 원유 수출의 80% 이상(하루 평균 140만 배럴)을 사들인 핵심 구매국이다. 하지만 이 우회 거래망이 앞으로도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7월 14일 미국의 해상 봉쇄가 재개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중국으로 향한 이란산 원유 수송선은 전무한 상태다. 원유 수송이 장기간 끊기면 물물교환 체계의 핵심 재원도 고갈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압박 수위도 최고조에 달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란에 대한 '경제적 고립 작전'을 선언하며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이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공식 경고했다. 이란의 자금세탁을 돕는 모든 주체를 달러 시스템에서 제거하겠다고도 못 박았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과의 거래 의혹과 관련해 "당신이 설명한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며 유엔 안보리 승인이 없는 일방적 제재에 일관되게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이 제재 회피망을 치밀하게 설계해 미국의 압박을 피하면서도 자국 경제 피해는 철저히 차단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안드레아 기셀리 영국 엑시터대 국제정치학 강사는 로이터에 "중국이 미국의 제재 위협에 맞서면서도 주요 금융기관이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되는 파국은 원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그럴듯한 오리발을 원한다"고 짚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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