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부통령 대좌' 갈리바프, 종전 국면서 이란 실력자로 떴다
협상단장으로 美와 대화하며 '실용주의' 행보…시위 유혈진압 전력도
최고지도자·혁명수비대와 미묘한 권력투쟁…이란의 미래 좌우할 '야심가'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이란이 15일(현지시간) 미국과의 전쟁 종식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에 합의하면서 협상단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65) 이란 의회 의장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AFP통신은 이날 미국과의 전쟁으로 사실상 최고 지도부가 붕괴한 이란에서 갈리바프가 가장 주목받는 실력자로 우뚝 섰다고 평가했다.
갈리바프는 지난 4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의 고위급 종전 협상에서 이란 대표단을 이끌며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직접 마주 앉은 인물이다.
이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양국 간 최고위급 접촉으로, 갈리바프가 전후 이란을 대표하는 '대중적 얼굴'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고 AFP는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갈리바프가 이란의 핵심 결정권자들을 직접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미국 대표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WP는 갈리바프가 "미국 팀에게 세련되고 전문적인 협상가이자, 새로운 이란의 잠재적 지도자라는 인상을 줬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는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란산 석유의 최대 구매국인 중국과의 외교를 총괄하는 대중국 특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국제 무대에서 그가 보인 실용적인 행보와 달리 이란 내에서 그는 민중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고 AFP는 전했다. 1999년 학생 시위와 2009년 부정 선거 시비로 촉발된 녹색 운동, 불과 몇 달 전인 올해 1월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거 한 연설에서는 "직접 몽둥이를 들고 시위대를 때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22세의 나이로 사단장이 된 갈리바프는 정예군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공군 사령관과 이란 경찰청장에 이어 테헤란 시장직까지 역임한 비(非)성직자 출신 거물이다.
군과 행정을 모두 경험한 그는 이란의 보수 강경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며 여러 차례 대선에 도전했을 만큼 대권에 대한 야망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이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르잔 사벳 스위스 제네바대 연구원은 "갈리바프는 이란의 새 얼굴로 부상했지만 그가 완전히 주도권을 쥔 건 아니다"라며 "여전히 그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란 내부에서는 갈리바프와 아마드 바히디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등 강경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벳은 "정치인으로서 갈리바프는 야심 차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왔지만, 동시에 매우 신중한 성향을 지녔다"며 "이러한 성격 덕분에 그는 다른 많은 인물이 숙청되는 와중에도 이슬람 공화국 권력 구조의 정점까지 경력을 이어가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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