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의 '암흑 항해'…이란 감시 피해 불 끄고 '위험천만' 통과

식별장치 끄고 미군 지원으로 해협 봉쇄 돌파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유조선 칼리스토호가 오만 무스카트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 이란은 7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들에 혁명수비대 해군으로부터 통과 허가를 받지 않을 경우 격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6.03.10.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부 선박들이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 선박은 야간 시간대 외부 조명과 AIS를 끈 "암흑 항해"를 통해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IS를 끄면 선박이 포착되기 어려워져 이란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들 선박은 또한 미군 당국자들과 교신을 유지하며 항해한다. 미군은 레이더, 드론 등 군사 장비를 활용해 해상 교통 상황을 감시하고 이들의 안전한 통과를 돕는다.

선주들과 미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이들에게 언제 조명을 꺼야 할지, 이란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 초에는 원유 200만 배럴을 실은 그리스 선적 유조선이 오만 해안 인근 수로를 통과하는 동안 미국과 교신했다. 지난 3월 초부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여 있었던 이 선박은 현재는 해협을 빠져나와 인도로 향하고 있다.

최근 선박을 통과시킨 그리스 선주 2명은 고객들로부터 자신들의 화물도 같은 방식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지 묻는 연락을 받고 있다고 WSJ에 전했다.

WSJ는 이들 선박의 이동이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프로젝트 프리덤'이 잠시 시행됐던 당시 미 해군이 개척한 경로를 통해 가능했다고 전했다. 당시 미군은 작전 개시에 앞서 몇 주 동안 수중 로봇을 이용해 이 경로의 기뢰를 제거했다.

팀 호킨스 미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과 지속해서 소통하고 협조하고 있다고 WSJ에 전했다.

에너지 정보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이달 호르무즈 해협 통행 선박의 대부분은 해협 북쪽 이란 해안을 바짝 붙어 이동하는 이란 측 지정 경로를 따르거나, 불을 끈 채 통과해 추적이 어려웠다.

해운 정보업체 윈드워드의 분석가 미셸 보크만은 "모든 이들이 선박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작은 기회의 창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WSJ에 전했다.

야간 시간대 AIS 없이 항해하는 것은 선박 간 충돌 위험을 초래한다. AIS를 끌 경우 전자 해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어 레이더에 의존해 항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숙련된 항해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형 유조선을 정지 상태로 유지한다면 선사들은 유류비와 선원 인건비로 하루 1만 달러(약 1500만 원)에서 1만 5000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료는 급등했고, 선원들은 전쟁 할증료 때문에 임금을 두 배로 받고 있다.

해운업계는 이러한 비용 증가가 선박들이 안전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해협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강한 동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부 보험사들은 안전하게 통과한 선박에 지불한 보험료의 50%를 환급해 주는 방식으로 '항해 성공'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WSJ는 "선박들이 아무런 피해 없이 해협을 통과하는 흐름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대한 이란의 장악력을 시험하는 것"이라며 종전 협상 과정에서 이란 정부의 협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jw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