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백번 말했다"…사우디, 트럼프 '아브라함 협정' 강요에 분노

英 매체 "빈살만, 트럼프 요구에 좌절 넘어 분노"
"팔레스타인 문제 악화…빈살만, 네타냐후와 협력 불가 판단"

작년 11월 미 백악관에서 만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11.18. ⓒ 로이터=뉴스1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노'(No)라고 100번 말했고, 앞으로 100번 더 말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전쟁 종식 이후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의 관계 정상화) 확대 구상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인 반응이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랍국 정상들에게 종전 이후 아브라함 협정을 의무화하겠다고 주장한 데 대해 좌절감을 넘어 격한 분노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아랍·이슬람 국가 정상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브라함 협정 확대 구상을 꺼내자 순간 정적이 흘렀고, 트럼프 대통령은 "다들 아직 거기 있냐"고 농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추진한 이스라엘과 아랍국들 간 국교 정상화 합의다. 현재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이 협정에 합류했다.

사우디는 중동의 맹주이자 역내 최대 산유국으로 아브라함 협정을 통한 미국의 중동 전략을 완성할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사우디를 '보석'이라고 부른다. 일단 사우디와 국교를 정상화하면 파키스탄 등 다른 이슬람 세계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요구에도 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서 최대 핵심인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2025.9.29 ⓒ 로이터=뉴스1

빈살만 왕세자는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 세대와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우선해야 할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 실리를 중시하는 그는 미국과 방위 협력을 확대하면서 실제로 과거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검토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사우디의 화해 손짓에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완강히 거부하며 빈살만의 분노를 키웠다. 빈살만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재임하는 한 이스라엘과의 협력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뒤 사우디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이스라엘의 혹독한 가자지구 봉쇄 및 무자별 보복 공격은 역내 국가들 사이 네타냐후 총리가 상종해선 안 될 '유독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한층 굳혔다.

아브라함 협정에 이미 가입한 UAE가 이란 전쟁 기간 네타냐후 총리가 UAE를 방문했다는 이스라엘 정부 발표를 한사코 부인한 이유도 반이스라엘 정서를 고려해서다.

영국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사남 바킬 중동 담당 국장은 미국의 아브라함 협정 확대 요구는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다운 주장"이라고 말했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