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경제' 이란 반정부시위 대학가 확산…히잡 사태 후 최대
물가폭등·통화가치 하락에 이틀째 시위…2022년 '히잡 의문사 시위' 3년만
트럼프 "미사일·핵 재건시 추가 공습" 압박까지…하메네이 지도력 위기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이란에서 살인적인 고물가와 환율 급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시위 이틀째인 30일(현지시간)에는 대학가로 시위가 번지며 긴장이 더욱 고조되자 정부는 대화를 제안하며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도 테헤란 곳곳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레자 샤여, 평안히 잠드소서"라며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라비 왕조의 초대 샤(왕) 이름을 구호로 외쳤다. 차라리 왕정 시절이 나았다는 자조가 담긴 구호다.
전날 시작된 시위는 하루 만에 대학가로 확산됐다. 준관영 파르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테헤란 4개 대학에서 수백명의 학생이 시위를 벌였다.
CNN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구금 중 의문사한 22세 마흐사 아미니 사건 이후 벌어진 전국적 봉기 이후 최대 규모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시위 도중 도로에 양반다리로 앉아 오토바이를 탄 경찰 20명에 맞선 한 시위자의 영상이 '톈안먼 순간'이라며 확산되기도 했다.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 시위 당시 전차 행렬 앞에 혼자 서서 막아섰던 '탱크맨'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시위를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고물가와 부패가 사람들을 폭발 직전까지 몰아넣었다"며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물가 상승과 통화가치 폭락으로 촉발됐다. 리알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고, 최근 환율은 달러당 약 142만 리알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2월 물가상승률은 42%대를 나타냈다. 통화가치 급락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매상인과 서민 경제를 직격했다.
이란 경제는 수십 년간 이어진 서방의 제재에 더해 지난 9월 유엔에서 핵 관련 제재가 복원(스냅백)되면서 벼랑 끝에 몰렸다. 지난 6월엔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이은 미사일·핵 시설 공습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
과거 강경한 치안과 대규모 체포로 시위를 진압해 왔던 이란 당국은 심상치 않은 시위 확산세에 긴장하며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 사법부는 환율 변동 책임자를 신속히 처벌하라고 지시했으며,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통화가치 폭락의 책임을 물어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29일 밤 SNS 게시글에서 내무장관에게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를 들을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30일에는 노조와 시장 상인 대표들과의 회의에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고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NN은 이란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졌지만 86세의 병약해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기존 강경 노선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사일과 드론을 계속 생산하고, 타격을 입은 역내 대리세력을 서둘러 재건하며 서방이 제시하는 협상 전제조건을 일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은 경제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압박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네티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이란이 탄도미사일이나 어떤 핵무기 프로그램이든 재개할 경우 이스라엘의 추가 공습을 지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런던에 기반을 둔 아므와즈 미디어 편집장 모함마드 알리 샤바니는 "지금은 하메네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큰 부작용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며 "그래서 큰 결정을 피한 채 관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yeh25@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