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폭탄에 반정부시위 폭발…이란 대통령 "대화하자" 자세 낮춰

'히잡 시위' 이후 최대 규모…테헤란 상인들, 가게 문 닫고 거리로
환율 급등에 제재까지 '첩첩산중'…개혁파 대통령 시험대 올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29일 상인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2025.12.29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경제 상황 악화에 이란 수도 테헤란 상인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라"며 대화를 주문했다.

30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내무부 장관에게 시위대 대표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 주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유화적인 발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시위 때문이다. 시위는 지난 28일 테헤란 상점가와 시장을 중심으로 시작돼 29일 더욱 격화됐다.

이는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가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시위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란 경제의 총체적 붕괴였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1년 전 대비 40% 이상 폭락했고, 이스라엘과 '12일 전쟁'을 치른 지난 6월 이후에만 60% 가까이 폭락했다. 28일 비공식 시장에서 미화 1달러는 142만 리알에 거래됐다. 1년 전 82만 리알 수준에서 두 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9월 2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 나서고 있다. 2025.9.24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살인적인 물가 상승도 민심에 불을 질렀다. 이란의 12월 공식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42.2%에 달했고 특히 식료품 가격은 72%나 폭등했다. 테헤란의 한 직장인은 "두 달 만에 월급의 실질 가치가 300달러에서 2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분노한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의 즉각적인 개입과 명확한 경제 정책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테헤란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보안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란 정부도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란 사법부는 환율 변동 책임자를 신속히 처벌하라고 지시했으며,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통화가치 폭락의 책임을 물어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이란 경제는 수십 년간 이어진 서방의 제재에 더해 2025년 9월 유엔의 핵 관련 제재 복원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경책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개혁파로 분류되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강경 일변도였던 과거와 달리 시위대에 대화를 제안했지만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가진 이란의 정치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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