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혁명의 시간'…벼랑 끝에 선 쿠바 [최종일의 월드 뷰]

2017년 10월 쿠바를 방문했을 당시 아바나의 카피톨리오 모습. 2017.10 ⓒ 뉴스1 최종일 기자
2017년 10월 쿠바를 방문했을 당시 아바나의 카피톨리오 모습. 2017.10 ⓒ 뉴스1 최종일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혁명으로 세운 고립의 성벽

쿠바는 숨 가쁜 근현대사를 겪었다. 흑인 노예무역을 했던 스페인의 식민통치는 약 400년간 지속됐다. 20세기 들어선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 아래 바티스타 정권의 독재가 이 카리브해 섬나라에서 펼쳐졌다. 정권은 쿠바 경제의 핵심인 설탕 산업과 공공사업을 미국 기업에 넘겼다. 토지는 미국 자본과 소수 대지주가 장악했다. 아바나는 미국 자본과 마피아가 투자한 카지노와 호텔로 인해 '카리브해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렸다. 부패한 정권에 대한 민중의 봉기는 미국의 비호 아래 진압됐다.

쿠바의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들의 쌓인 분노는 멕시코에 망명 중이었던 피델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 등과 3년간의 무장투쟁 끝에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배경이 됐다. 혁명군은 1956년 12월 멕시코에서 요트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들어왔다. 정원 25명에 탑승자는 82명. 도착 직후 정부군에게 적발됐고 이중 12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게릴라전을 벌였고 농민들의 지원으로 세를 불려 3년 뒤 혁명에 성공했다.

플로리다와 최단 거리는 약 145km. 미국의 턱밑에서 일어난 혁명을 미국은 좌시하지 않았다. 1961년 약 1500명의 쿠바계 반공 게릴라가 벌인 '피그만 침공 사건'은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고 작전을 지휘했지만 실패했다. 이 사건은 카스트로에게 '미국에 맞선 영웅이란 서사를 부여했다. 케네디 행정부가 중앙정보국(CIA)을 주축으로 전개한 대규모 비밀 공작인 '몽구스 작전' 역시 실패했다. 독극물 담긴 시가, 폭발 담배, 화장실용 폭발 장치, 조개껍데기 폭탄 등 여러 암살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600회가 넘는 암살 시도에 카스트로는 소련에 핵미사일 배치를 강력히 요구하게 됐고, 이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소련 핵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놓고 미국과 소련이 전쟁 직전까지 갔다.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소련이 기지의 완공을 강행한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한 뒤 전 세계는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쿠바를 방문 중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아바나의 라티오 아메리카노 구장에서 열린 미 프로야구팀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국가대표팀 간 야구 시범경기 관람하면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과 웃고 있다. 2016.03.23 ⓒ AFP=뉴스1

위기 이후,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는 더욱 공고해졌다. 미국과의 모든 무역, 금융 거래, 여행이 제한됐다. 쿠바는 생존을 위해 소련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완전히 밀착했다. 1991년 소련 붕괴에 따른 지원 중단은 쿠바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쿠바는 관광업 진흥과 점진적 시장개방으로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했다.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한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은 실용주의 노선을 걷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관계 정상화 선언과 쿠바 방문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2015년 양국 대사관이 다시 열렸고, 쿠바는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됐다. 2016년 오바마는 88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쿠바를 직접 방문했다.

시간이 멈춘 아바나…빗나간 기대

2017년 10월, 쿠바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올드 아바나 집들의 발코니에 널려있는 빨래와 벗겨진 페인트칠, 원색의 유럽풍 건물들, 그라피티들이 어우러져 강렬한 매력을 뿜어댔다. 옛 국회의사당 건물인 웅장한 카피톨리오 앞을 지나가는 올드카들과 중심가 오비스포 거리의 흥겨운 음악, 석양이 내리는 말레꼰(방파제)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에도 새 시대에 대한 기대는 여전했다. 당시에 만났던 현지인들은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막연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어떤 현지인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국가 지도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은 유럽식 민주주의의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여행기에서 "쿠바 앞에 놓인 길이 평탄할 것 같진 않다"고 적었다. 자본주의 동경과 독재 반대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공산당 지도부는 민심 변화를 적극 수용하지 못했다. 혁명 1세대인 피델과 라울 형제는 59년간 쿠바를 통치했다. 의료·교육 등에서 일부 진전을 이뤘으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화 측면에서는 퇴보했다.

쿠바 아바나 도심 풍경 2017.10 ⓒ 최종일 기자=News1

미겔 디아스-카넬은 2018년 대통령, 2021년에는 공산당 제1서기장이 됐지만 개혁의 걸음은 너무나 느렸다. 외부의 충격도 가혹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제재로 외부 자본 유입은 막혔고, 개인 여행도 제한됐으며 쿠바는 다시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됐다. 코로나19로 주력 산업인 관광업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쿠바 내 반정부 시위 때문에 관계 복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제난과 생존의 시험대

트럼프 2기 들어 쿠바에 대한 조치는 더욱 강해졌다. 미국은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 해역)에 대한 배타적 지배력 재확립을 분명히 하며, 지난 1월 군사 작전으로 쿠바의 최대 후원국인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려 쿠바 고립을 심화시켰다. 연료 공급은 사실상 차단됐다.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는 제3국에 대한 위협도 가했다.

쿠바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하루 약 10만 배럴의 석유가 필요하지만 국내 생산은 4만 배럴에 불과하다. 기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이 80~90%를 차지하는데. 설비마저 노후화됐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려 했지만 10% 안팎에 그친다. 국영 병원 상당수는 서비스를 축소했고, 연료 부족과 쓰레기 수거 트럭 운행 중단으로 여러 지역에 쓰레기가 쌓였다.

16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시내 거리에서 올드카 한 대가 쓰레기 더미 옆을 지나가고 있다. 2026.02.16 ⓒ 로이터=뉴스1

2017년 쿠바인들이 꿈꿨던 '새로운 시대'는 10년 가까이 실현되지 않았다. 이젠,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달 초 연설에서 "붕괴는 제국주의자들의 사고방식에나 있는 것이지, 쿠바인들의 사고방식에는 없다"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겠지만 창의적 회복력으로 함께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압박이나 전제조건 없이, 평등한 입장에서, 주권과 독립, 자결권을 존중하며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늘날 쿠바 인구의 다수는 더 이상 혁명의 세대가 아니다. 체제의 정당성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으로 평가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연료가 끊긴 발전소처럼 혁명의 서사는 힘을 잃었다. 쿠바는 지금 비극적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