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머리 꼭대기 앉은 AI"…잭슨홀서 경고한 디스토피아

AI는 중앙은행 읽는데 중앙은행은 AI 몰라…"시장 더 불규칙해질 위험"
"인간·AI용 기자회견 따로 해야 할 수도"…워시는 "AI는 새로운 생산요소"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8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있다. 2026.08.28 ⓒ AFP=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이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을 당국보다 먼저 알아챈다면 어떻게 될까. AI가 중앙은행의 행동을 예측해 거래에 이용하는 반면 중앙은행은 AI가 왜 그런 거래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온 통화정책의 작동 방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 모인 세계 중앙은행가들 앞에서 AI 시대의 암울한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 29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인공지능과 금융의 멋진 신세계(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Brave New World in Finance)'라는 논문 내용을 발표하고 AI가 금융시장과 중앙은행에 가져올 수 있는 극단적 상황을 분석했다.

핵심 개념은 '비대칭적 이해(asymmetric understanding)'다.

브루너마이어 교수에 따르면 AI는 인간이 남긴 방대한 글과 자료를 학습하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를 상당히 잘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은 AI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리는지 완전히 이해하거나 안정적으로 예측하지 못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정보 격차가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의 연설과 의사록, 과거 정책 결정이 모두 AI의 학습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AI는 이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의 정책 반응을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중앙은행은 AI 거래자들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은 중앙은행이 시장을 이해하는 것보다 중앙은행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AI가 정책 담당자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깨닫기 전에 그 결정을 예상하는 상황까지 가능하다고 봤다.

가격 올라도 이유 모른다…AI가 흔드는 금융시장

문제는 AI가 중앙은행보다 빨리 움직인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AI 거래가 확산하면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가격 신호' 자체를 인간이 해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주가나 채권금리 등이 움직이면 투자자와 중앙은행이 경제지표나 정책 전망, 투자자들의 판단 등을 통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AI들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거래하면 가격이 왜 움직였는지 인간이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이 경우 인간 투자자들이 가격 움직임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 시장에 뛰어들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꺼릴 수 있다고 봤다.

AI 거래자들이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담합하거나 통제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인간이 AI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는 세계에서는 시장이 정보를 덜 제공하고 더 불규칙해지는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공지능 일러스트 ⓒ 로이터=뉴스1
"투명성 다시 생각해야"…인간·AI용 기자회견 따로?

AI는 중앙은행의 소통 방식도 뒤집어놓을 수 있다. 중앙은행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책 결정과 경제 전망을 시장에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향으로 투명성을 높여왔다. 중앙은행이 향후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낮추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AI가 중앙은행의 정책 반응을 지나치게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이러한 예측가능성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브루너마이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투명성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중앙은행의 예측가능성이 금융시장에서 상대방에게 무기를 쥐여주고 공공 당국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으로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두 차례 해야 하는 상황도 상정했다.

하나는 인간에게 통화정책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처리할 수 있는 학습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만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이 같은 대응책도 문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AI 시대에는 금융 규제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복잡하고 세밀하게 조정된 규칙보다는 AI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행동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단순하고 강력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 투자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별도의 시장을 유지해 AI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금융시장이 계속 작동할 수 있는 '인간 백업'을 남겨두는 방안도 제안했다.

AI가 중앙은행을 '함정'에 빠뜨린다면

브루너마이어 교수가 특히 우려한 것은 금융위기 상황이다.

AI를 활용하는 시장 참여자들이 중앙은행의 정책 반응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반면 중앙은행은 이들의 거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장이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이를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에 빗댔다.

당시 알파고가 제2국에서 둔 '37수'는 인간 프로기사들이 처음에는 실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였다. 하지만 나중에 그 전략적 가치가 드러났고 알파고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AI가 금융시장에서도 이처럼 중앙은행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취하고, 당국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로 몰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중앙은행은 시장을 이용해 통화정책을 전달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할 수도 있다고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주장했다.

신진서 9단이 2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알파고 10년 : 위대한 동행' 행사에 참석해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 및 CEO와 친선대국을 마친 뒤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4.29 ⓒ 뉴스1 안은나 기자
워시는 AI 낙관론…"새로운 생산요소"

브루너마이어 교수의 발표 하루 전인 지난 28일 잭슨홀 기조연설에 나선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AI의 잠재적 위험보다는 경제에 가져올 기회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워시는 "AI의 활용이 경제 전반에서 생산성을 상당하고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그렇다면 언제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어 "노동자와 연준의 고용 책무에는 어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며 AI가 노동시장과 생산성에 미칠 영향을 연준이 풀어야 할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워시는 "AI가 새로운 변수, 잠재적으로는 새로운 생산요소이며 경제와 통화정책 수행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루너마이어 교수 역시 AI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정보를 처리해 위험관리와 사기 탐지, 금융감독을 개선할 수 있고 중앙은행도 경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거나 위기를 분석하는 데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AI의 장점이 부정적 위험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지만 그는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검토해야 AI가 가져올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며 "진짜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에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