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CPI도 달라져야…민간 빅데이터로 美경제 측정 보완"

블룸버그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정부 통계 수집 차질·경제구조 급변"
온라인 가격 32만건·기업 실적발표 AI 분석…"공식통계 대체 아닌 보완"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인공지능(AI)이 미국 경제의 생산 방식뿐 아니라 물가와 성장률을 측정하는 방식까지 바꿀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 통계의 조사 응답률이 떨어지고 경제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온라인 가격과 결제·고용자료, 기업 실적발표 같은 민간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공식 통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애나 웡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11일 블룸버그 마켓츠 기고에서 미국 경제통계의 품질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며 민간 데이터를 활용하면 정부 통계보다 빠르고 세밀하게 경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웡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2019~2020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에 파견됐다. 그 이전에는 미 재무부 국제경제분석실 부국장을 지냈으며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용 190만명 수정…셧다운 땐 CPI 발표도 무산

웡은 코로나19 당시 공식 통계 수집이 차질을 빚자 휴대전화 이용량과 급여 일정 서비스, 신용카드 결제 등 민간 데이터를 동원해 실시간 경제 상황을 파악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미 노동통계국(BLS)은 당시 대면 조사를 중단하면서 설문 응답률이 급락했고 팬데믹 종료 이후에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실제 2021년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시작할 당시 고용통계는 누적으로 190만명 상향 수정됐다. 반대로 2024년과 2025년에는 각각 100만명 넘게 하향 수정됐다.

지난해 미 연방정부 장기 셧다운 때는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아예 발표되지 않았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에 따른 물가 충격이 정점을 찍었는지조차 공식 통계로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웡은 지적했다.

경제구조의 변화도 기존 통계 방식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상품 가격은 온라인에서 수시로 바뀌고 전자상거래가 보편화했지만 미국 CPI의 상당 부분은 온라인 유통이 확산하기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조사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AI 성능 두 배 뛰어도 가격 같으면 '물가 제자리'?

AI 확산은 물가와 생산성 측정에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웡은 1990년대 후반 컴퓨터 성능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품질 개선을 물가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쟁점이 됐던 사례를 들었다.

AI 코딩 도우미의 가격이 6개월 전과 같지만 성능이 두 배 좋아졌다면 이를 단순히 '가격 변화 없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품질 향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실제 물가는 공식 지표보다 낮고 생산성 증가율은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보완할 수단으로 웡은 민간 빅데이터를 제시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블룸버그 프라이스 프로젝트'는 약 14만개 상품에서 매달 32만1000건 이상의 가격을 추적한다. 공식 CPI 가격 관측치의 약 3배 규모다.

이 데이터에서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하드디스크와 SD카드, 메모리 모듈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처럼 전체 CPI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개별 품목의 움직임도 조기에 포착됐다.

수천개 기업 실적발표도 AI로 분석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연준의 경기동향보고서인 '베이지북(Beige Book)'과 유사한 취지의 '오렌지북(Orange Book)'도 운영한다. 베이지북이 기업과 지역사회의 현장 목소리를 취합해 경기 흐름을 파악한다면 오렌지북은 AI로 수천건의 기업 실적발표를 분석해 고용과 가격, 투자, 소비자 수요 등의 변화를 추적한다.

이란 전쟁 이후에도 오렌지북에서는 기업들이 견조한 수요와 국방 주문 증가, AI 투자 확대를 계속 언급했다. 국제유가 급등만을 근거로 경기침체 가능성을 과도하게 높게 평가하는 것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웡은 설명했다.

기업들의 AI 활용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도 실적발표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밝혔고 다른 기업들은 감원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강조했다.

다만 웡은 민간 데이터와 AI가 정부 통계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부 통계는 엄격한 방법론과 일관성, 투명성이 강점이고 민간 데이터는 신속성과 세밀함, 새로운 현상을 측정하는 유연성이 있어 서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웡은 과거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이 고용·CPI·소매판매 같은 월간 정부 통계 일정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더 빠르고 다양한 데이터에서 남들보다 먼저 거시경제 신호를 찾아내는 데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