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급락에 美 나선 이유…'엔 캐리'로 美금융시장과 한 몸 됐다

40년만의 엔저, 달러 확보 위한 美국채 매각 가능…엔 캐리 청산 촉발할 수도
美기업 경쟁력 약화·日의 대미투자 악영향…日재정적자 등 엔저 압력은 여전

미국과 일본 재무당국이 공동 성명을 통해 엔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사실을 발표한 3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6.8.3 ⓒ 뉴스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과 일본이 28년 만에 처음으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공동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것은 급격한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엔화는 최근 달러 대비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가 올해 여러 차례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시장에서는 엔화 추가 하락과 일본발 금융 불안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다.

미국 재무부가 일본의 엔화 방어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엔화는 반등했다. 엔화는 개입 직전 달러당 164엔에 육박하며 1986년 이후 가장 약한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미·일 공동 대응 이후 156엔대까지 회복했다.

미국이 다른 국가의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이 엔화 강세를 지원하기 위해 개입한 것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2011년에도 미국은 일본 외환시장에 참여했지만, 당시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급등한 엔화를 약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일본 금융 불안, 미국 시장으로 번질 우려

미국이 엔화 방어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금융시장의 혼란이 미국 경제와 글로벌 시장으로 번질 가능성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의 금융시장 불안이 미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국가로, 보유 규모는 1조1000억 달러를 넘는다. 일본이 추가적인 엔화 방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설 경우 국채 가격 하락과 미국 채권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보유한 미국 국채와 주식, 회사채 등 미국 자산 전체 규모는 약 3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 금융시장의 급격한 불안이 미국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또한 엔화는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세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이며, 낮은 일본 금리를 활용해 엔화를 빌려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주요 자금 조달 통화다.

엔화가 급격히 약세를 보일 경우 투자자들이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엔 캐리를 통한 수익이 무의미해질 수 있어서다.

이런 사태가 오면 미국으로선 현재 엔화 가치를 방어하는 데 쏟는 노력보다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존 브롬헤드 모디스 애널리틱스 이코노미스트는 NYT에 "미국 입장에서 엔화 지원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은 보험"이라고 평가했다.

가타야마 일본 재무상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해 10월 27일 도쿄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은 지지통신 제공. 2025.10.27 ⓒ AFP=뉴스1
무역과 대미 투자에도 영향

엔화 약세는 미국 무역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 일본 기업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미국 기업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약 1460억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했고, 일본에 약 820억 달러를 수출했다.

또한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에도 부담이다. 일본은 2025년 무역 협정의 핵심 내용으로 미국 내 약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데, 엔화 가치 하락은 기업들의 투자 비용을 높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의 대미 투자 확대를 주요 경제 성과로 내세우고 있어, 엔화 안정은 미국의 경제·통상 목표와도 연결돼 있다.

이번 개입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다른 국가의 통화시장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의 금융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지원한다"며 엔화의 "상당한 저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할 경우 추가 개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닛케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개입을 "우정의 증거"라고 표현했지만, 그 배경에는 동맹 지원뿐 아니라 미국 국채 시장과 달러 체제를 지키려는 냉정한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했다.

근본 원인 해소 없으면 엔저 압력 지속

일본은 올해 이미 수백억 달러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실시했지만 엔화 약세 흐름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일본 정부는 추가 개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매각하기보다는 미 연준의 달러 공급 장치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닛케이 따르면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3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 연준의 '외국·국제통화당국 대상 레포 기구(FIMA Repo Facility)' 활용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해외 중앙은행 등 외국 통화 당국을 대상으로 한 연준의 달러 공급 장치다. 제도를 통해 이용 가능한 한도는 600억 달러(약 86조 원)다.

다만 미·일 공동 개입이 엔화 약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NY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엔화 약세의 핵심 원인이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이, 일본의 막대한 국가 부채,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에 대한 시장 우려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는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은행(BOJ)은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1%까지 올렸지만, 미국 연준의 금리는 여전히 3%대 중후반으로 일본보다 높다.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달러 자산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계속되는 한 엔화 약세 압력은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