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200엔도 배제 못한다"…월가, 엔화 약세 장기화 경고

BOJ 긴축 지연·재정 악화 겹칠 위험…엔저 구조적 고착화
헤지펀드 엔화 숏 2017년 이후 최대…옵션시장 "1년내 180엔 가능성 15%"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지폐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달러당 200엔.

한때 상상하기 어려웠던 엔화 가치 폭락이 이제는 월가에서 '극단적이지만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속도가 미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재정 건전성 우려까지 겹치면서 엔화 약세가 구조적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도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엔화는 최근 달러당 162엔 후반대로 198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월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달러당 180~200엔까지도 열어둬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블룸버그가 2일 보도했다.

티로프라이스(T. Rowe Price)는 최악의 경우를 달러당 169엔으로 제시했고, 미즈호은행은 170엔, 일본 2위 금융그룹인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SMFG)은 향후 수년 내 180엔 가능성을 시나리오에 포함했다.

보다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모넥스그룹의 제스퍼 콜과 블루엣지어드바이저스의 캘빈 여는 BOJ가 추가 금리 인상에 뒤처질 경우 달러당 200엔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싱가포르 헤지펀드 블루엣지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캘빈 여는 "BOJ의 금리 인상이나 외환시장 개입이 없다면 달러·엔 환율은 내년 말 180~205엔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포지션도 엔화 약세를 떠 받친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엔화 순매도(숏) 포지션은 지난달 2017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외환 옵션시장에서는 향후 1년 안에 달러당 180엔까지 상승할 확률을 약 15%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환율이 달러당 200엔까지 치솟을 가능성은 1% 미만으로 여전히 극단적인 시나리오로 당장 달러당 200엔이 임박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이 같은 수준까지 가려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져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보다 더 매파적으로 돌아서고, 미국 국채금리가 크게 오르는 동시에 국제유가 급등과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함께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누빈(Nuveen)의 로라 쿠퍼 매크로 크레디트 책임자는 "BOJ가 정책 정상화를 더 늦추거나 추가 엔화 약세를 사실상 용인하는 상황까지 겹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BOJ는 기준금리를 1%로 인상하며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렸지만 시장은 여전히 긴축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물가 안정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한 입장을 BOJ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웠다.

37년 일본 시장 전문가인 아미르 안바르자데 애시메트릭어드바이저스 전략가는 "일본이 통화위기 직전에 서 있다"며 "상당 부분은 BOJ 정책당국이 자초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올해 엔화 방어를 위해 단행한 외환시장 개입이 성과를 거뒀다는 입장이다. 미무라 아쓰시 일본 재무성 국제담당 차관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달러당 155엔 수준까지 엔화를 되돌린 개입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당시 미국의 지지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외환시장 개입이 일시적으로 환율 상승 속도를 늦출 뿐 구조적인 약세를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본은 지난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사상 최대인 11조7300억엔을 투입해 엔화를 방어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과 2024년 개입 때와 마찬가지로 엔화는 다시 약세 흐름으로 돌아섰다.

특히 일본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여기에 일본이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95%를 넘는 만큼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며 엔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SMBC닛코증권의 마루야마 린토 외환·금리 전략가는 "엔화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단순한 약세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급락"이라며 "외환시장 개입마저 효과를 잃는다면 시장은 일본 당국의 개입 한계 자체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넥스그룹의 제스퍼 콜은 "현재 일본 정책당국에는 사실상 레드라인이 없다"며 "확장 재정과 완만한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되는 한 결국 200엔을 향해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