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열렸는데 항로는 2개…美·이란 요구 달라 선박 '난감'

오만쪽 항로로 美공군 보호 받으면 이란 제재 위험
이란 지침 따라 이란 영해 항로 운항시 美제재 우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2026.06.18.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서로 다른 항로를 권고하면서 국제 해운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군사적 보호가 가능한 남쪽 오만 해역 항로 이용을 권장하는 반면 이란은 자국 연안 항로를 이용하고 사전 허가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어 선주들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보도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평화협상을 재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점차 정상화되고 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에 따르면 영국 시간 기준 22일 정오까지 24시간 동안 30척이 넘는 선박이 해협을 통과했다. 지난 2월 28일 분쟁 발발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란 "허가 받고 연안으로"…美 "오만 항로 이용하라"

문제는 항로 선택이다. FT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19일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전 새로 설립한 '페르시아만 해협청'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했다. 또 선박들이 이란 해안선에 가까운 항로를 이용해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벌금 부과나 회항 조치가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반면 미국과 일부 서방 보험사들은 미군 공중 엄호가 가능한 오만 해역 항로 이용을 권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오만 항로를 '가디언 엔젤(Guardian Angel)' 항로라고 명명하며 안전한 통항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FT에 "이란은 선박들이 자국 항로를 이용하면서 통행료를 내기를 원하고 있다"며 "반면 미국은 오만 항로 이용을 요구하며 군사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따르자니 미국이 문제, 미국 따르자니 이란이 문제"

선주들은 양측 요구 사이에서 난감한 처지다. 미국 선사 세이프시시핑의 스리니바스 안찬 회장은 FT에 "선주와 운항사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와 미국 당국 지침에 따라 오만 항로를 이용하면 이란 당국의 검문이나 억류, 적대적 조치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이란 요구를 수용해 연안 항로를 이용하면 미국의 제재 규정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며 보험사의 권고에도 어긋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드라이델 시핑의 코스타스 델라포르타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안전과 규제 준수, 운항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해 일부 선박들이 출항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통항 재개에도 불확실성 여전

다만 해상 안전 위험은 다소 완화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UKMTO는 미국과 이란의 평화 합의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해상 활동이 이전보다 덜 공격적으로 변했다며 호르무즈 해협 위험등급을 '심각(severe)'에서 '보통(moderate)'으로 낮췄다. 또 "미 해군의 지속적인 존재가 안정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서는 평화협상이 최종 합의에 이르기 전까지는 선박 운항과 보험, 제재 리스크를 둘러싼 혼란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보호하는 오만 항로와 이란이 요구하는 연안 항로가 사실상 경쟁하는 상황이 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긴장이 해상 물류 현장에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