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세계 에너지위기 더 위험한 국면 진입…76개국 비상조치 돌입"

3월말 55개국보다 크게 늘어…유가 180달러 시나리오 거론

2026년 4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의 한 BP 주유소 주유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붙어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중동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세계 에너지 위기가 더 위험한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진단했다.

FT는 17일(현지시간)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인용해 현재까지 76개국이 경제 비상조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말의 55개국에서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여름철 냉방 수요와 휴가철 이동 증가가 겹치면서 원유와 휘발유, 경유, 항공유 공급 압박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원유 재고는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이 조기에 재개되지 않을 경우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애버딘의 폴 디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 인터뷰에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180달러까지 치솟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지금 빌린 시간 위에 살고 있다(We are living on borrowed time)"며 유가 180달러 시나리오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포스톨로스 치치코스타스 유럽연합(EU) 교통 담당 집행위원도 FT 행사에서 "향후 몇 주 안에 중동 분쟁이 끝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세계 경기침체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FT는 현재 세계 경제가 사실상 "에너지 소비 이상 상태(existing beyond its energy means)"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IEA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글로벌 원유 소비는 생산량보다 하루 약 600만 배럴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공급 부족 규모가 하루 800만~900만 배럴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족한 물량은 비축유 방출과 재고 감소로 메우고 있지만 한계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글로벌 원유 재고는 전쟁 이후 약 3억8000만 배럴 감소했다.

JP모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재고가 이르면 6월 초 "운영상 스트레스 수준(operational stress levels)"에 접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일부 신흥국에서는 에너지 부족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필리핀 등이 임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에너지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공급 부족보다 가격 급등 형태로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HSBC의 킴 푸스티에 유럽 석유·가스 리서치 책임자는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위기의 "진앙(epicentre)"은 정제연료 시장이라며 정유업체들이 비싼 원유 구매와 급등한 운송비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FT는 여전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원유 공급 상황이 조만간 개선되면서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의 AI 투자 붐과 견조한 소비가 글로벌 성장세를 계속 떠받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동시에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는 "확전 시나리오(escalation scenario)"가 현실화할 경우 공급망 붕괴와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