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중동 포성 잦아들자 '달러 약세' 베팅…"달러 패권은 유지"

미-이란 완화에 안전자산 수요 둔화…달러 헤지 비율 2년래 최고

미국 달러 지폐와 석유 및 석유 드럼통 모형 일러스트. 2023.06.06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과 이란 사이 긴장 완화로 달러의 안전자산 매력이 약해지면서 월가에서 달러 약세에 베팅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와 위상이 흔들린다기 보다는 지정학과 통화정책의 여파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월가 주요 은행들은 미국과 이란 전쟁 국면에서 나타났던 달러 강세 흐름이 상당 부분 소진됐다고 보고 있고, 다시 달러 약세에 대비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블룸버그가 1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이체방크와 웰스파고는 최근 달러에 대한 시각을 한층 보수적으로 바꿨다.

도이체방크는 전쟁 리스크가 달러를 떠받치던 힘이 약해졌다고 봤고, 웰스파고는 달러 대신 스웨덴 크로나 같은 상대적으로 위험자산 성격이 강한 통화에 주목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펀드매니저들이 두 번째로 확신하는 거래로 '달러 숏'을 꼽았다고 전했다.

시장 데이터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스테이트스트리트에 따르면 달러 헤지 비율은 최근 2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높아졌고, 옵션 시장에서도 달러 강세에 대한 확신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급등했던 달러는 최근 들어 상승분 대부분을 반납하며 충돌 이전 수준에 가까워졌다.

다만 달러의 지위가 흔들린다고 보기는 이르다. 프랭클린 템플턴의 소날 데사이 CIO는 달러를 대체할 진짜 기축통화가 등장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제 규모, 깊은 금융시장, 달러 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신뢰를 달러 패권의 핵심 요인으로 꼽으며, 현재로서는 달러를 대신할 신뢰할 만한 통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씨티그룹은 반대로 원자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채권 수익률과 달러가 다시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이 되살아나면 유가가 다시 뛰고, 그 과정에서 달러가 재차 강세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장 구조를 봐도 달러 우위는 여전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글로벌 외환거래의 89%가 달러를 포함하고 있었고, 위안화 비중은 8.5%에 그쳤다. 데사이 CIO는 최근 달러 약세도 구조적 쇠퇴가 아니라 경기 사이클에 따른 조정이라고 해석했다.

정책 변수로 달러 전망이 복잡해질 가능성도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달러에 부담을 주는 반면, 지정학적 긴장이 재차 고조되거나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달러가 다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당분간 달러가 장기적으로는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지정학과 통화정책에 따라 등락을 반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