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의 '살인 예고'…마지막 총구는 그를 향했다[이세별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서 발생한 잔혹범죄…44세 남성, 21년만에 사형 집행
11살 때 친척들에게 성폭행 등 피해…'불특정 다수' 향한 복수로 이어져
- 김학진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며칠간 세차게 비가 내린 뒤, 그친 땅은 여전히 축축했다. 질퍽한 땅 위에는 사람들이 오고 간 발자국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2004년 10월, 미국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외딴 마을. 늦은 밤, 한 남자가 다급하게 뛰어와 대형 트럭의 문을 두드렸다.
"차가 고장 났습니다"
인적이 드문 장소에 나타난 남성의 다급한 목소리에 차량의 주인 클리프턴 데일 게이니(36)는 잠시 휴식을 멈추고, 그를 돕기 위해 차에서 내려 사고 차량으로 이동해 보닛을 열었다.
그 순간 들려온 두 발의 총성. 한 발은 등에서 가슴을 향했고, 다른 한 발은 정확하게 뒤통수를 관통했다.
그렇게 첫 번째 희생자인 30대 남성 클리프턴은 영문도 모른 채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며칠 뒤 근처를 지나던 한 여행자에 의해 시신이 발견됐다.
첫 번째 희생자의 시신이 발견된 지 이틀 뒤인 10월 11일, 같은 지역의 인근 주택가.
자신의 두 번째 제물을 찾아 헤매던 '광인(狂人)' 스티븐 코리 브라이언트(당시 23세)는 집 안에서 홀로 TV를 시청 중이던 퇴역군인 윌러드 'TJ'(62)를 발견했고, 클리프턴을 살해했던 그 방식 그대로 그에게 접근해 총을 쏴 살해했다.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인연이나 연관성이 없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브라이언트는 단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제물'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설계한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한 브라이언트는 싸늘히 식어가는 시신 옆에 앉아, 자신의 '완벽한 결과물'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사망자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희생자의 딸 킴벌리 디스(34)였다.
"여보세요, 아빠. 나 할 말 있어요. 요즘 고민이 너무 많아. 만나서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수초 뒤, 전화기 너머로 낯선 남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찾는 그 사람은 이제 없다. 나는 너희에게 찾아온 밤의 침입자다"
당황한 딸 킴벌리는 "당신은 대체 누구세요?"라고 되물었지만, 이미 전화는 끊긴 뒤였다.
지역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현장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과 함께 피로 적혀진 'Victim 4 in 2 weeks. Catch me if u can' (2주 안에 네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이라는 또 다른 희생자의 발생을 암시하는 예고 문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지 또다시 이틀 뒤인 10월 13일, 불과 10여km 떨어진 도로변에서 30대 남성 크리스토퍼 얼 버지스가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비 내리는 한적한 길을 홀로 걷던 크리스토퍼에게 친절하게 다가온 낯선 남성, 연쇄살인마 스티븐 코리 브라이언트는 세 번째 희생자에게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접근해 차에 태운 뒤, 역시 등과 머리 뒤쪽을 향해 총을 발사해 살해했다.
희생자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평범한 남자였다는 것, 그리고 '친절한 낯선 남자'에게 호의를 베풀었거나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희생자가 발생한 지 불과 사흘 뒤 경찰은 현장에 남겨져 있던 혈흔과 지문 등 다양한 증거를 토대로 강력한 용의자인 브라이언트의 자택을 급습했고, 이상하리만큼 '요지부동'한 상태로 있던 코리 브라이언트를 체포했다.
"코리 브라이언트는 고개를 숙인 채 숨죽이고 있었으며,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당시 그를 체포한 한 경찰관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 아이의 눈엔 항상 고통이 있었어요. 학대를 당하던 11살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죠. 그는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피폐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그 괴로움을 해소하려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겁니다"
고모 테리 콜더(49)는 참고인 조사에서 울며 이같이 증언했다.
하지만 체포된 코리 브라이언트는 며칠간 이어진 조사에서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고, 묵비권을 행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그는 먼저 수사관에게 면담을 요청한 뒤 갑자기 입을 열었다.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어릴 적, 네 명의 친척 형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 기억이 성인이 될 때까지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질 않았어요"
그는 어린 시절 친척 네 명에게 반복적인 성폭행과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10년 넘게 그를 따라다닌 그 악몽은 불면과 환청, 분노, 발작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가 가진 트라마우의 결과물은 '불특정 대상을 향한 복수'로 이어졌다.
"하지만 총을 쏘는 순간,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목소리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해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불법 약물을 섞은 대마초를 피우며 스스로를 파괴해 가고 있었고, 그 끝은 결국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파멸이었다.
그에게 살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를 멈추는 방법이자 누군가에게 지배되고 있다는 무력감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큰 도구이자 유일한 행위였다.
2008년 9월 11일,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2011년 이후 다양한 문제로 사형을 중단했다. 그러나 2024년, 주의회가 법안을 개정하며 사형제가 부활했고, 기존의 '약물 사형'에 '총살형'이 추가됐다.
지난달 31일,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된 코리 브라이언트는 "나는 사격대 위에 서겠다"고 서명하며 마지막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는 사건 발생 후 21년 만인 오는 14일 새벽, 사우스캐롤라이나 교도소에서 세 명의 사격수에 의해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할 예정이다.
그는 주 역사상 50번째 사형수이자, 세 번째로 총살형이 집행되는 인물로 기록된다.
사형 집행을 앞둔 브라이언트는 짧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그가 피로 남겼던 문장 'Victim 4 in 2 weeks. Catch me if u can'
그의 예고 속 '네 번째 희생자'는 결국 그 자신이었다. 끝내 스스로가 겨눈 총구 앞에 서게 될 그는 자신의 광기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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