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다시 빌 게이츠에 가슴이 뛰었다

진성훈 국제부 부국장

(서울=뉴스1) 진성훈 국제부 부국장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전쟁에서 무승부라도 얻어낸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지난달 30일 경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매겨온 이른바 펜타닐 관세를 10%P 인하하고, 중국 선박의 미국 항만 입항수수료 부과 조치를 중단하는 등 휴전에 합의했다.

사실 내용을 뜯어보면 시진핑의 승리다. 그날 중국이 내려놓은 것은 모두 미국의 조치에 맞불로 꺼냈던 카드들이었다. 다 거둬들인 것도 아니고 딱 미국이 물러선 만큼만 접었다. '중국은 트럼프도 어쩌지 못하는 나라'라는 사실만 확실해졌다. 이제 중국산 제품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관세는 20%다.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이 뭉텅이로 살점을 떼어주면서 낮춘 관세가 모두 15%다.

중국의 대미 항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인 무기는 주지하듯 희토류다. 희귀한 흙(Rare Earth)을 뜻하는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를 비롯해 풍력터빈, 전투기 등 첨단 기술·방위산업에 널리 사용되는 필수 원소 17종을 말한다. 중국이 채굴 70%, 정제·가공 9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도 희토류를 제대로 휘둘렀다.

그런데 이 좋은 걸 중국만 갖게 된 건 무슨 일인가. 중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널리 분포하지만 추출과 가공 작업이 고난도다. 특히 정제 과정에서 막대한 물과 화학물질을 소비하고 방사능 노출 이슈까지 있어 환경 문제가 불가피하다. 한때 상당한 희토류 생산국이었던 미국은 환경 규제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 희토류의 제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이 지금처럼 세계를 호령하게 된 데에도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과 이에 따른 비정상적 수준의 정부 지원이 바탕이 됐다. 유럽에선 값싼 중국 전기차가 밀려들자 경쟁력이 뒤지는 유럽 자동차가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중국산 전기차에 상계관세를 매겨 수입가를 높이고,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를 금지하는 기존 결정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손이 묶인 채로 전동화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는 유럽 산업계 호소가 먹혔다.

중국에 이어 탄소배출 2위국인 미국은 며칠 전 브라질에서 폐막한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불참했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는 사기극"이라며 세계 기후위기 대응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파리협정을 1기 때에 이어 2기 때도 다시 탈퇴하고,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를 시추하라)을 외치며 화석연료의 부활을 꿈꾼다.

환경에 눈을 질끈 감았던 중국의 희토류 승리의 경험, 기후변화 대응 모범생인 유럽의 변심, 트럼프의 기후 폭주 등은 모두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전지구적 노력과는 상충된다. 세계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 비극을 매일 보도하는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현실들이 중첩된 이번 브라질 기후총회는 결국 핵심 목표였던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을 마련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의 승리"라고 했다. 190개 참가국 중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한 국가는 110여개국에 불과했다. 최대 탄소배출국 중국은 2035년까지 '정점 대비 7~10% 감축' 목표를 내놨는데 2030년 이전에 도달할 정점까지는 여전히 탄소배출을 늘리겠다는 의미다.

한국은 개막 직전 가까스로 NDC를 제출했는데, 목표를 상향해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대 61%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탈석탄동맹(PPCA)에 가입하며 2040년까지 탈석탄을 예고했다. 이제 어엿한 선진국으로서 용기있는 결정일 수도 있겠으나, 주요국들의 미온적 움직임은 신경쓰지 않은 비현실적 고집 아니냐는 비판도 따라붙는다.

이번 기후총회를 앞두고 빌 게이츠(70)가 지난달 말 "모든 COP30 참석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들"이라며 자신의 게이츠노트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그는 최근 수십년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활동에 매진해 왔다.

게이츠는 기후변화 대응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수십년 안에 엄청난 기후변화가 문명을 파괴할 것이며 지구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말해 상당한 논란을 불렀다. 그는 "기후변화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겠지만 인류를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종말론적 전망에 휩싸인 기후활동가 대부분이 단기적 배출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려고 합성비료 사용을 금지하자 작물 수확이 줄어 식량 위기를 겪은 스리랑카 등을 사례로 들면서 "세상은 때로 기후변화와 싸우려는 노력이 다른 어떤 노력보다 가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기후변화와 질병, 빈곤은 '모두' 중대한 문제"라고 했다. 배출량 감축이 최고의 선으로 간주되면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사람들의 실제 삶을 향상시키는 데 쏟을 자원이 부족해지는 걸 걱정했다.

'배신자' 비난을 부를 성싶은 주장들 사이에서, 유독 눈길을 잡아끈 건 '기술 혁신'에 대한 그의 확신이었다. "적절한 투자와 정책이 마련된다면 향후 10년간 저렴한 탄소제로 신기술을 대규모로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저는 혁신이 기후변화를 억제할 것이라고 낙관할까요?" "인공지능(AI) 활용을 통한 여러 기업들의 발전 가속을 목격하면서 확신하게 됐습니다."

특히 "다행히도 인간의 발명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Luckily, humans’ ability to invent is better than it has ever been)"는 대목에서는, 마치 발명하는 인간에 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물색없이 가슴이 조금 뛰었다. 새까만 도스 시대를 밝혀준 그의 '윈도우'를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천재 프로그래머의 통찰이니 전적으로 믿고 싶어졌다. 탄소배출 감축 목표 '따위'로 논쟁을 벌인 게 부끄러운 역사가 되어도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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