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진정제에 절여진 시신…남편과 내연남, 누가 범인인가[이세별사]

체포→보석→기소 철회→다시 구속…다른 사건 수사하다 시신 발견
미국 콜로라도 50대, 아내 살해 혐의 체포…5년만에 사건 종결 앞둬

편집자주 ...국내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기묘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소설처럼 정리해 전해드립니다. 현실보다 낯선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사건이 많습니다. '기묘한 세상!'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뉴스1은 이 세상 별 사건을 소개하는 '이세별사'를 싣습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초여름이라기엔 지나치게 스산한 아침, 작은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산길 마을엔 오묘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2020년 5월 10일, 콜로라도 중부 산악지대. 아침이 막 밝아오던 그때, 한 남성이 경찰에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내가 어젯밤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나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남편 배리 모퓨와 사망한 아내 수전 모퓨. 출처=더선
실종된 여성의 휴대전화 속 의문의 메시지…최초 신고자는 남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먼저 실종자의 주거지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 배리 모퓨(당시 52세)의 설명과 달리 아내가 타고 나갔다는 자전거는 창고 구석에 숨겨진 듯 그대로 있었고, 남편이 지목한 실종 지점 주변 흙바닥은 누군가 쓸어낸 것처럼 지나치게 정돈돼 있었다. 자연스러운 실종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었지만, 누군가 사라진 자리를 설명해 줄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튿날까지 계속해서 집 내부를 수색하던 과정에서 경찰은 다락방 한쪽 구석에 있는 실종 여성 수전 모퓨(당시 49세)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평소 외출 때 반드시 휴대전화를 챙기던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정황이었다.

경찰은 즉시 수전의 휴대전화를 분석했고, 그 과정에서 실종 3일 전, 그녀가 의문의 남성에게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어제 말한 거…나 이제 정말 결정할 때가 온 것 같아"

비밀번호까지 걸려있던 채팅방 속 메시지를 받은 인물은 제프 리블러(당시 51세)였다. 수사팀은 메시지의 내용을 토대로 이들 부부와 제프까지 셋의 관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신을 안고 있을 때만 숨을 쉬는 느낌이야" "집안 꼴이 엉망이야" "나한테 와도 돼"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그 사람(배리로 추정)은 내가 뭘 하는지 다 알고 있어. 무서워"

수전의 휴대전화에서 추가로 발견된 메시지는 매우 노골적이었다.

사망한 아내 수전 모퓨와 남편 배리 모퓨. 출처=ABC 뉴스
소환된 내연남 "2년간 우린 친구 이상의 관계였다"

경찰은 다음날 제프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지만, 실종 당일 그는 다른 주(州)에서 근무 중이었고 근무 기록과 휴대전화 위치 정보, 카드 결제 내역 등이 모두 사건 발생지를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혐의 선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수전이 2년 넘게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그녀의 결혼 생활과 심리 상태에 대해 여러 단서를 제공했다.

"그녀가 몇 년 동안 힘들어했어요. '남편이 나를 너무 통제하려 한다' '나는 늘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숨이 막힌다'는 말을 항상 내게 해왔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곧 모든 걸 끝내겠다'고 했습니다"

제프의 진술과 알리바이를 모두 확인한 수사팀의 관심은 다시 남편 배리 모퓨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수전이 느꼈다는 압박감, 통제, 두려움 등이 남편의 초기 진술과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밀한 검토에 들어간 수사팀은 그 과정에서 남편 배리 모퓨의 휴대전화 기록에 남아있는 비정상적인 이동 패턴을 확인한 뒤, 그의 새벽 시간대 동선을 추적했다. 그 결과 차량(트럭) GPS에서 새벽 시간대 산악지대 인근에 4시간 넘게 정차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배리가 진술했던 "그 시간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 내용과 완벽히 상반된 내용이었다.

사망한 수전 모퓨. 출처=WTHR
딸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엄마는 숨을 쉬고 싶어"

당시 FBI 분석관은 보고서에 이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 시간대에 그 장소를 갈 이유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음. 목적을 갖고 이동한 것으로 추정됨'

또 그날 밤 부부의 큰 딸은 엄마에게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희 아빠는 나한테 원하는 게 너무 많아. 엄마는 숨을 쉬고 싶어"

반면 남편 배리 모퓨는 직원에게 "요즘 집은 전쟁터야. 다 터지기 직전 같아"라고 하소연한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경찰에 재소환된 배리는 "우린 잘 지냈어요. 요즘 조금 부딪히긴 했지만, 그런 건 모든 부부가 그렇지 않습니까?"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수사가 이어지던 5월 중순. 경찰은 배리의 차량 바닥에서 지워진 세정제의 흔적과 미세 혈흔을 발견했다. 또 수색견은 실종 신고가 들어왔던 날 배리의 차량이 머물렀던 위치와 거의 동일한 지역 산기슭에서 수전의 소지품 일부를 발견했다.

수사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한 단서들이 연이어 발견됐지만 즉각적인 체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온 흔적들은 모두 '가능성'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1급 살인 혐의로 법정에선 배리 모퓨. 출처=KSAT.com
수사 12개월 만에 남편 1급 살인 혐의로 체포

수사팀은 각각의 조각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내는 작업에 집중했다. 디지털 포렌식, GPS 기록, 트럭 이동 경로, 금융 기록, 배리·가족·지인 등 주변인들의 진술까지 수사에 12개월을 쏟았다.

마침내 2021년 5월 5일. 수전이 사라진 지 거의 1년 만에 배리는 1급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배리는 수갑을 차면서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시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기 수감 상태로 남아 있지 않았다. 4개월 뒤 법원은 전자발찌 착용과 거주지 제한을 조건으로 그의 보석을 허가했고, 2022년 4월19일 검찰이 기소를 철회하면서 그는 법적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되었다.

그로부터 또다시 1년 뒤, 마침내 사건을 종결지을 만한 '스모킹건'이 발견됐다.

2023년 9월, 콜로라도 남부 외딴 산악지대에서 수전의 유골이 확인된 것이다. 유골을 발견한 것은 CBI 요원들이었다. (CBI=콜로라도주 내 살인·실종·강력 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주 정부 최상위 수사기관)

당시 CBI는 '수전 모퓨 실종 사건'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의 사건에 대해 수색 중이었다. 당시 수사관들은 흙과 나뭇더미에 덮여 있던 유골을 발견했고, DNA 분석 결과 수전 모퓨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부검 결과 뼈조직에서는 'BAM'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 경찰이 사건 초기 수색 과정에서 배리의 차고에서 확보된 다트 건(마취약을 발사하는 총)과 동물 진정제용 주삿바늘 뚜껑은 당시엔 결정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도구들이었지만, 유골에서 동물 진정제의 일종인 'BAM' 성분이 검출되면서 3년간 흩어져있던 퍼즐이 마침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BAM=사슴·곰·대형 야생동물을 포획하거나 마취할 때 쓰는 고농도 진정제. 일반인은 구할 수 없으며, 극소량만으로도 즉각적인 마비·의식 소실을 일으키는 강력한 화학 물질.)

기소 철회 후 딸들과 함께 이동중인 배리 모퓨. 출처=WESTworld.
"나는 절대 범인이 아니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남편

배리와 수전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틀어져 있었다. 경제적 문제, 잦은 다툼과 불신 그리고 아내의 외도. 2025년 6월 검찰은 배리를 '도주 가능성이 있는 피고인'이라는 판단하에 그를 다시 구속했다.

그는 체포 순간에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평범한 남편입니다. 나쁜 남자가 아니에요. 그냥 상황이 꼬인 거죠. 나는 그녀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겁니다"

또한 수전의 내연남이었던 제프 리블러는 배리의 마지막 구속 전 소환 조사 과정에서 이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녀는 항상 내게 말했어요. '이 집은 더 이상 내가 살 집이 아니다'라고"

배리 모퓨의 최종 재판은 2025년 12월로 예정돼 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과 구치소를 오갈 것이다.

배리 모퓨는 여전히 "정황만 있을 뿐. 나는 절대 범인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은 단호하다.

"이 사건은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단 하나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모두 이미 답을 알고 있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