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인간 모습이어야 하나요'…진화하는 휴머노이드 철학

인간같은 로봇에서 기계다운 로봇으로
AI 중심 설계에서 벗어나, 몸 자체가 지능이 되는 미래

2025년 7월 28일, 중국 상하이 세계박람회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회의(WAIC)에서 한 남성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지고 있다ⓒ AFP=뉴스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개발 열풍이 거세다. 사람처럼 걷고, 말하고, 판단하는 로봇이 속속 등장하면서 기술의 진보를 실감케 한다. 하지만 동시에, 왜 꼭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인도 출신의 미국 국적 억만장자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는 2040년까지 세계가 십억 개의 이족보행 로봇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고,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38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그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직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이 있다. CNBC는 2030년까지 세계 공장에서 800만 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인간형 로봇은 이미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고, 돌봄이나 대민 서비스처럼 사람과의 소통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반론은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다. 인간과 닮은 정도가 낮을 때는 귀엽고 친근하지만, 어중간하게 닮으면 오히려 섬뜩하고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외모가 완벽하더라도 표정, 말투, 반응 속도가 어색하면 여전히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휴머노이드 반대론자들은 이 골짜기를 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말한다.

18일 상하이 신국제엑스포센터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6)에서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로봇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25.6.18 ⓒ AFP=뉴스1 ⓒ News1 신기림 기자

인도 정보통신 전문 플랫폼 테크기그(TechGig)에 따르면 구글의 ‘에브리데이 로보틱스’ 프로젝트를 이끈 한스 피터 브론드모는 인간을 닮은 로봇은 오히려 사용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산업용이든 개인용이든, 인간을 모방하기보다는 성능과 사용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더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런던 사우스뱅크대학교의 기계지능(MI) 전문가 하메드 라자브 교수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오늘날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로봇은 중앙의 ‘두뇌’가 모든 것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설계되는데, 이는 인간의 유연하고 효율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운동선수는 관절, 척추, 힘줄이 조화롭게 작동하며 움직이지만, 로봇은 금속과 모터로 조립된 제한된 구조를 갖고 있어 두뇌가 지시해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

에너지 효율도 문제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는 단순한 걷기 동작에도 초당 약 500와트를 소모한다. 인간은 더 빠른 걸음을 초당 310와트로 해내니, 로봇이 더 단순한 일을 하는 데도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셈이다.

게다가 옵티머스는 티셔츠를 접을 만큼 똑똑하지만, 구겨진 침대 위에 놓인 셔츠와 이불을 구별하지 못해 실패할 수 있다. 인간은 촉각으로 옷감을 느끼고 직관적으로 움직이지만, 로봇은 손끝 센서가 부족해 시각과 AI만으로는 현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 텐진에서 23일(현지시간) 개최된 세계지능박람회에서 한 아이가 테슬라 휴머노이드 로봇의 손가락을 잡고 있다. 2024.06.23 ⓒ AFP=뉴스1 ⓒ News1 임여익 기자

라자브 교수는 오늘날 로봇 기업들이 대부분 소프트웨어와 AI 중심 기업이기 때문에 ‘두뇌 우선’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연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지능적인 몸체를 완성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뇌나 모터 없이도 환경에 반응하는 ‘기계지능’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솔방울의 비늘은 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데, 이는 순수한 물리적 반응이다. 이런 방식의 지능이 로봇에 적용된다면,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기계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제안이 아니라, 로봇 설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선언이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하던 기존의 접근에서 벗어나, 자연처럼 반응하는 로봇, 즉 몸 자체가 지능을 갖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로봇의 미래는 더 이상 ‘두뇌를 가진 기계’가 아니라, 지능적으로 설계된 몸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