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의 허를 찌른 책 '팩트풀니스', 하지만…
[세계의 지성③]스웨덴의 통계학 거장 한스 로슬링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매년 대학생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해온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지난해 6월에는 자신이 읽은 '가장 중요한 책'이라면서 미국 모든 대학교와 대학원 졸업생들에게 아예 공짜로 책을 제공했다. 통계학 거장이자 의사인 스웨덴의 한스 로슬링(1948~2017)의 '팩트풀니스'(김영사)가 바로 그 책이다.
'사실충실성'이라고 해석되는 제목인 팩트풀니스는 2017년 출간 후 100만부 넘게 팔리며 전세계 지식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확증편향'이 기승을 부리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팩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고 평가받는 이 책을 뉴스1 국제부의 김윤경·권영미·한상희·이창규·강민경 기자가 함께 읽고 토론했다.
◇책을 읽은 첫 느낌은
▶권영미 기자(이하 '권)'=시니컬하면서도 유머감각 있게, 어려운 내용을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는 필력과 실력이 부러웠다.
▶김윤경 기자(이하 '김') =콘셉트를 잡고, 구조를 잡고, 그후 밀고나가는 필자의 실력이 대단하다.
▶이창규 기자(이하 '이')=모든 장의 구조가 똑같아서 통일감이 있어서 잘 읽힌다. 일러스트도 좋았다.
▶한상희 기자(이하 '한')=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자칫하면 어렵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주제들인데 첫 부분에 테스트를 제시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젊은 시절 아프리카와 인도 등 제3세계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담으로 장을 시작해 흥미를 갖게 했다.
◇읽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나▶한=사실 읽기에 마음이 편한 책은 아니었다. 그래프와 수치로 가득한데다, 첫 장부터 책을 닫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침팬지보다도 정답률이 낮다고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나는 빈곤 문제나 여성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사망자수 추이를 제외하고는 다 틀렸다. 저자가 사실을 왜곡한다고 비판하기 때문에 언론 종사자면 마음이 더 불편할 수 있다.
▶권=전반적으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부정당해서인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후변화, 사회 갈등, 역사 발전 등의 문제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렌즈를 끼고 보는데 저자는 객관적 자료들을 통해 보라면서 기존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제9장에서 '말라리아나 수면병처럼 가난한 이들이 걸리는 병을 거대 제약회사가 연구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누굴 비난해야할까' 물으면서 결국 제약회사 사장, 이사, 주주,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 은퇴 기금, 은퇴 기금을 산 할머니, 할머니에게서 용돈을 받은 학생에게까지 책임이 내려왔다. '비난본능'에 좌우되지 말고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를 희석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확한 데이터와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까지 전달한다는 부분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글로벌 관점 또는 보다 큰 관점에서 바라보다가는 개별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강민경 기자(이하 '강')=저자는 '못사는 나라'(개발도상국)와 '잘사는 나라'(선진국)라는 두 극단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한사람당 1일 소득 수준에 따라 1달러, 4달러, 16달러, 32달러를 버는 각각 1~4단계로 국가들을 나눴다. 그걸 보니 일찍부터 저개발국에 눈을 돌려서 성공한 화웨이가 떠올랐다.
화웨이는 2014년만 해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5위권 밖이었다. 하지만 좀 남달랐던 게, 유럽의 3~4단계 국가들뿐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의 2~3단계 국가들도 노렸다는 점이다. 애플이 고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4단계 시장만 노리는 동안, 화웨이는 몸집을 키워서 지금 애플을 제치고 출하량 세계 2위 업체가 됐다.
▶권=그런데 우리가 가진 10가지 본능 때문에 세상을 왜곡해서 보게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인데 과연 근거가 있는 건가. 우리가 가진 본능이 이 10가지밖에 없나, 서로 상충되는 다른 본능이 인간에게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간극본능·직선본능·다급함 본능같은 것은 무뎌지고 다른 본능들 예를 들어 곡선본능, 여유본능 이런 걸로 바뀌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간은 하던 일을 관성적으로 계속 하려는 본능이 있다. 연기가 자욱한 위험한 상황에도 공포를 못느끼고 별일 없으려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일부 현대인에게 어떤 본능은 도리어 퇴화한 듯 보이는데….
◇언론이 공포를 조장해 독자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는 데 동의하나
▶강= 그런 면이 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기자로서 그 지적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책을 읽고 오히려 위안받은 게 컸다. 그동안 너무 비극만 보는 것 같아서 우울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한= 개인적으로 인간은 부정적인 소식과 공포에 예민해, 이를 자극해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저자의 말도 맞는 면이 있지만 보잉 항공기 사고와 인도네시아 지진 보도 등을 보면 언론의 긍정적인 기능도 매우 크다. 사고 책임을 부정하던 보잉이 사과를 하고 소프트웨어 오작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 문제를 한목소리로 지적한 기사들 덕이 어느 정도 있다. 수십년 전에 비해 줄었다곤 해도 해마다 반복되는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는 언론의 조명이 없었다면 개선되는 속도가 훨씬 느리지 않았을까.
▶김=난민사진 같은 것은 통계만큼이나 세계에 대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4월에 로이터통신 소속 한국인 사진기자가 찍어 상을 받은 사진에 미국 국경을 넘으려던 온두라스 이주민 모녀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 엄마가 입은 엘사가 그려진 티셔츠와 기저귀를 찬 딸의 모습 같은 게 너무 짠하고 많은 것을 시사했던 것 같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프레임'이 느껴진다면 잘못됐지만 언론이 날것의 팩트를 주어서는 안되고 하나하나의 기사에 기자의 시각이 어느 정도는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신사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저자에게 아쉬운 점은
▶권= 이 책이 바탕에 깔고 있는 '세상이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 역시 팩트가 아니라 주장일뿐이다. 또 무엇인가를 상대적으로 파악할 때와 절대적으로 파악할 때의 차이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굶는 이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니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100의 부를 상위 1%가 대부분 가지고, 굶어죽던 10%가 이제는 굶어죽지 않지만 부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면, 단순히 세계가 좋아졌다고 말하기 힘들어진다.
▶이=의사인 그가 1980년대 초 모잠비크에서 어린이들을 치료할 때 더 많은 아이들에게 치료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치료만 했다. 그를 본 다른 곳에서 온 동료의사는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에게 할수 있는 건 다 해야 해"라고 말했지만 저자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더 많은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의사라면 캠페인(시스템 개선)은 정부에 촉구하고 자신은 한사람 한사람을 더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강= 저개발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시장주의'인 것이 아쉬웠다. 361페이지에는 대놓고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를 최고의 투자 장소라고 강조한다. 이들 나라가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편견 때문에 투자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논리다. 좋게 해석하자면 세계 구호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해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말한 것으로 보인다. 약력을 봐도 저자는 한평생을 가난과 질병과 싸우는데 헌신한 분이다. 하지만 너무 개발과 소득, 소비, 숫자로만 세계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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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계의 지성]은 동서양 석학들의 이론이나 저서, 지성계의 흐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세번째는 '팩트풀니스'의 저자인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 거장 고(故) 한스 로슬링 박사입니다.기자들이 책을 읽고 소감을 자유롭게 이야기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