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분에 못 이긴 클린턴 전 대통령 호텔 거울 깨다

"미국이 카타르에 2022 월드컵 개최지 내줬을 때 분했다"

2010년 미국 월드컵 유치위원회 명예 유치위원장을 맡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AFP= News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지난 2010년 12월2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스위스 취리히 시내 '사보이 바우어 엔 빌 호텔'에 성난 표정으로 들어섰다.

호텔 리셉셔니스트는 클린턴이 몹시 화가 났다는 건 알았지만 왜 그렇게 화가 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클린턴은 객실 문을 잠그고 탁자 위에 놓인 장식물을 집어 들더니 격노의 외침과 함께 벽에 걸린 거울에 냅다 집어던졌다. 거울이 산산조각 난 건 당연지사다.

미국 대통령까지 지낸 클린턴이 왜 이런 점잖지 못한 행동을 했을까? 그는 미국이 202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다른 곳도 아닌 카타르에 최종 결선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클린턴은 지난 2년간 미국의 월드컵 유치를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의 집행위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온 터라 분노가 더욱 컸다. 미국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명예 유치위원장으로 맡은 클린턴은 브래드 피트, 아놀드 슈워제네거, 모건 프리먼, 스파이크 리 등 월드스타들을 대동하며 유치에 전력투구했었다.

당시 미국의 가장 버거운 적수로는 호주와 일본이 손꼽혔지만, 카타르가 미국을 제치고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클린턴은 몹시 화가 나서 씩씩댔다"며 "그는 수치심을 느꼈고 카타르가 개최지로 선정된 결정을 결코 납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3차 투표에서 한국을 1표 차로 물리치고 결선에 올랐으나 최종 4차 투표에서 8표를 얻는 데 그쳐 14표를 쓸어 담은 카타르에 고배를 마셨다.

◇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당일부터 부정 의혹 고개 들어

카타르 월드컵 유치위원회가 승리를 자축하고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축구가 '새로운 땅'으로 갈 것이라고 선언할 때부터 이미 월드컵 개최지 결정 과정에 대한 의구심은 움트고 있었다.

FIFA는 어째서 축구 경기장은 고사하고 축구 자체의 역사조차 일천하며 여름이면 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 중동의 소국 카타르에 월드컵 개최권을 부여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카타르 출신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을 지낸 모하메드 빈 하만(65)이 2010년 12월 FIFA 집행위원회의 개최지 선정 투표 전후로 FIFA 고위 인사들에게 총 500만달러(약 51억원)어치의 뇌물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022 카타르 월드컵 유치위원회는 하만과 위원회는 무관하다고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가 결정된 직후부터 미국과 호주의 정부기구와 이들 조직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팀을 구성하거나 개인들을 고용해서 은밀하게 관련 의혹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증인들을 인터뷰하고 문서를 확보하며 FIFA 위원들이 카타르에 표를 던지게 된 숨겨진 동기에 대한 자신들의 확신하는 바를 찾아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들이 조사를 통해 확보했다는 문서와 영국 매체 선데이 타임스가 입수한 카타르의 뇌물 살포 관련 내부문건 사이에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국 자격을 박탈당할 경우 호주와 미국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경우 한국도 재선정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게 될 전망이다.

당시 1차와 2차 투표를 2위로 통과한 한국은 3차 투표에서 5표를 얻어 미국에 한 표 뒤진 3위로 탈락했었다.

카타르가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총 500만달러(약 51억원)어치의 뇌물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진은 카타르가 FIFA 집행위 투표에서 1등으로 개최지로 결정됐을 때의 모습. 오른쪽은 제프 블래터 FIFA 회장 © AFP=News1

◇ 잇따른 카타르 뇌물 제공 의혹 폭로에 개최지 재선정 가능성

각 언론사들 역시 카타르의 외물 유치 파문에 관한 자체적인 취재 내용을 보도하며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011년 물러난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과 그 가족이 2022년 월드컵 유치와 관련해 카타르의 한 기업으로부터 120만파운드(약 20억5094만4000원)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신문은 또한 지난달에도 2012년 퇴임한 전 브라질의 FIFA 집행위원인 히카르두 테이셰이라의 10살 난 딸 계좌에 200만파운드(약 34억1824만원)가 입금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선데이 타임즈는 지난 2일 하만과 그의 가족, 그리고 카타르 도하에 있는 기업들 소유의 계좌에서 나온 200만파운드의 돈을 둘러싸고 오고간 수백만건의 서류와 이메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만은 뇌물 자금을 만들기 위한 약 10건의 비밀 펀드를 통해 수십건의 뇌물 제공 혐의를 받고 있다.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뇌물의 일부는 아프리카 축구 관리들에게 건네졌으며, 이들은 24명으로 이뤄진 FIFA 집행위원회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4명의 위원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하만은 지난 2011년 FIFA 회장 선거에서 외물을 제공한 혐의가 포착된 후 평생 자격금지 처분을 받았다.

텔레그래프는 프랑스 축구 영웅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도 하만과 비밀 회동을 가진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태국은 카타르 지지에 대한 대가로 가스 거래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카타르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호주는 이미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재선정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 역시 호주의 움직임을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