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도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유럽 명품·자동차까지 넘보는 중국

장인 정신 깃든 유럽 제품까지 중국產 침공…"고사하거나 협업하거나"
2019년부터 중국 전기차 등 경쟁력 세져…독일 타격

유럽연합(EU)기(왼쪽)와 중국 오성홍기. 2024.05.29.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1000달러짜리 구찌 운동화부터 독일 자동차까지 중국이 만들고 있다. 싸구려 제품을 만든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중국이 기계적 정밀성과 장인 정신을 앞세워 살아남았던 유럽의 대표 상품 제조 분야까지 진출하면서 유럽 기업들이 새로운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에 따르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1000달러(약 136만원)짜리 스니커즈에 105년 전통을 깨고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을 붙였다. 구찌는 저렴한 노동력 때문이 아니라 탁월한 기술력과 품질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중국 제조업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 전 회장인 케어 깁스는 "상징적으로 중국의 시대가 왔다고 본다"며 "중국은 더 이상 싸구려 물건이나 저품질 제품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포천은 이를 2000년대 초반 발생한 '차이나 쇼크'를 넘어선 '제2의 차이나 쇼크'의 한 단면으로 분석했다. 1차 차이나 쇼크가 저렴한 의류와 가전제품 수출을 통해 충격을 줬다면, 이제는 유럽의 전통 명품과 자동차 산업까지 중국의 경쟁력에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하워드 유 교수는 "중국이 한국, 대만, 일본이 걸었던 경로를 따라 전례 없는 규모로 고급 제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 기업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 분석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중국의 수출 품목이 독일의 주력 상품인 공장 기계와 자동차와 겹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독일 완성차 업체들의 대중국 수출은 급감했고, 폭스바겐은 90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유 교수는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독일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내연기관의 경쟁력을 약화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제 전기차는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성능을 중심으로 판도가 바뀌었고, 중국은 이 분야에서 극도로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1970년대 스위스 시계 산업에 빗댔다. 당시 일본의 저렴하고 정확한 쿼츠 시계가 스위스 시계 산업을 거의 괴멸시킬 뻔했지만, 오메가 등 브랜드들은 최상위 시장으로 이동해 기계식 시계를 고급 제품으로 판매하며 명맥을 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스위스 시계 산업 종사자 수가 9만 명에서 3만 명 이하로 급감하는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유 교수는 중국이 유럽의 안방을 위협하는 지금, 유럽의 미래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럽의 경쟁 우위는 이제 맨 꼭대기 최상단에만 남아 있고, 중저가 시장은 사실상 잠식당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은 연간 9만 대를 판매하는 페라리와 달리 연간 900만 대를 판매하는 폭스바겐 같은 대중 시장 자동차 제조사들에 큰 딜레마가 되고 있다. 유 교수는 "폭스바겐처럼 대중 시장에 있다면 최상단으로만 물러설 수 없다"며 "전체 기업이 페라리처럼 적은 판매량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유럽 기업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기술을 배웠던 중국 제조업체들과 손잡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구찌는 중국 제조업체의 기술력과 이탈리아 브랜드를 결합해 '드립'이라는 스니커즈를 내놓았다. 폭스바겐 역시 2023년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의 지분 5%를 인수하고 현지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중국 업체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포천은 전했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