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중립 원칙 강화 개헌안' 부결 전망…"예상 집계서 71% 반대"(종합)
27일 국민투표 진행…개헌안 통과 시 대러 제재 동참 제한
'영구적·무장된 중립' 헌법 명시 추진…정부·주요 정당 반대
-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스위스의 중립 원칙을 헌법에 더 엄격하게 명문화하는 내용의 개헌안이 27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것으로 예상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GFS 베른의 이날 국민투표 예상 집계에서 유권자의 71%가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헌안은 스위스 보수 단체 '프로 슈바이츠'가 2022년 10월 중립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국민 발의를 추진해 12만 9806개의 유효 서명을 받으면서 2024년 5월 공식 성립됐다.
공식 명칭이 '스위스 중립 수호'인 개헌안은 '영구적이고 무장된'(perpetual and armed neutrality) 중립을 헌법에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위스가 공격받거나 임박한 위협에 직면한 경우를 제외하고 군사·방위 동맹에 가입하거나 협력하는 것을 제한하고, 유엔이 제재를 결정한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전쟁 당사국에 독자적인 제재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스위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이 없는 한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 최근 안보리에선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간 지정학적 경쟁으로 제재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투표 전부터 스위스 정부를 비롯해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을 제외한 주요 정당들이 반대 입장을 취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우세해 부결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다.
로랑스 펠만 리엘 사회당 의원은 스위스 공영방송 RTS에 예상 집계 결과에 대해 "스위스가 제재를 채택하고 국제사회에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재의 중립 정책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1815년부터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중립국'으로 공식 인정받았고, 1848년에는 헌법에도 중립 원칙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국가 간 전쟁에 참여하거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없지만, 경제 제재를 부과하거나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채 다른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스위스는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공식적으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했고, 1996년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fP)에 가입했다. 2025년부터는 유럽연합(EU)의 '항구적 안보 협력체제'(PESCO) 프로젝트 일부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스위스의 중립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커졌다. 스위스가 EU의 대러시아 제재를 대부분 채택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 나오면서 이번 국민투표로 이어졌다.
개헌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중립을 헌법에 더 엄격하게 규정할 경우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중립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그나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은 앞서 "현행 중립 정책이 스위스의 자유와 안보, 독립을 지켜준다"며 "새로운 도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의 중립을 강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밝혔다.
녹색자유당의 코리나 그레디그 의원도 "이 발의안은 중립을 고립으로 바꿔버릴 위험이 있다"며 "오늘날 세계에서 고립은 그다지 좋은 안보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반면 개헌안을 지지하는 이들은 스위스가 현재 유럽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도시 제네바와 중립을 위한 위원회'를 이끄는 사뮈엘 소마루가는 "우린 한 진영에 편입됐고 유럽을 따라갔다"며 "중립국으로서 스위스의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위스가 엄격한 중립의 정의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중립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엄격한 중립을 채택해야) 나토 국가들과 러시아 간 더 광범위한 군사 충돌이 벌어질 경우에도 스위스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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