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이 흔든 스위스 '중립국 지위'…27일 중립 강화 국민투표
통과시 나토 협력·대러 제재 동참 사실상 불가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선 '반대'가 압도적 우위
-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스위스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중립국 지위를 더 공고히 할지 여부를 규정하는 국민투표를 27일(현지시간) 실시한다. 이번 투표 결과에는 유럽에서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립국들의 역할에 대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스위스 보수 단체 '프로 슈바이츠'는 지난 2022년 10월 중립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국민 발의를 추진해 같은 해 11월부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후 12만 9806개의 유효 서명이 인정돼 2024년 5월 해당 국민 발의가 공식 성립됐다.
공식 명칭이 '스위스 중립 수호'인 이 발의안은 '영구적이고 무장된'(perpetual and armed neutrality) 중립을 스위스 헌법에 명시하고, 스위스가 공격받거나 임박한 위협에 직면한 경우를 제외하곤 군사·방위 동맹에 가입하거나 협력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유엔이 제재를 결정한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전쟁 당사국에 스위스 자체적으로 제재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한다.
스위스는 1815년부터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중립국'으로 공식 인정 받았고, 1848년엔 헌법에도 이를 명시했다. 그에 따르면 스위스는 국가 간 전쟁에 참여하거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순 없지만, 경제 제재 부과나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로는 협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스위스는 제1·2차 세계대전 땐 공식적으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지만, 1990년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했고, 1996년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fP)에 가입했다. 또 2025년부턴 유럽연합(EU)의 '항구적 안보 협력체제'(PESCO) 프로젝트 일부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스위스의 중립국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스위스 내에서 EU의 대러시아 제재를 대부분 채택한 데 대한 반발이 나오면서 프로 슈바이츠의 발의안 추진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최근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고 미국의 안보 보장마저 흔들리면서 오스트리아·아일랜드 등 다른 중립국들도 국방비를 늘리고 나토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스위스의 이번 국민투표는 중립국의 중립 유지 범위에 대한 기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베른대 유럽정치학 교수인 파비오 바서팔렌은 "이번 투표는 중립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묻는 게 아니다. 중립 자체는 매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며 "중립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관한 투표"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프로 슈바이츠의 발의안이 통과되면 스위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이 없는 한 대러 제재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 최근 안보리에선 거부권을 갖고 있는 상임이사국들 간의 지정학적 경쟁 때문에 제재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스위스 내에선 이 발의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아 현재로선 부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스위스 정부도 해당 발의안에 반대하고 있고,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을 제외한 모든 주요 정당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중립을 헌법에서 더 엄격하게 규정하면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중립 정책을 조정할 수 있었던 유연성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그나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은 앞서 "현행 중립 정책이 스위스의 자유와 안보, 독립을 지켜준다"며 "새로운 도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의 중립을 강하게 만든 요인"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녹색자유당의 코리나 그레디그 의원도 "이 발의안은 중립을 고립으로 바꿔버릴 위험이 있다"며 "오늘날 세계에서 고립은 그다지 좋은 안보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해당 발의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스위스 공영방송 SRG가 지난 16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선 발의안에 반대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63%, 찬성이 34%였다. 특히 국민투표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의 83%가 이미 투표 방향을 확고하게 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발의안 지지자들은 "스위스가 현재 유럽에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도시 제네바와 중립을 위한 위원회'를 이끄는 사뮈엘 소마루가는 "우린 한 진영에 편입됐고 유럽을 따라갔다"며 "중립국으로서 스위스의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위스가 엄격한 중립의 정의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중립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엄격한 중립을 채택해야) 나토 국가들과 러시아 간 더 광범위한 군사 충돌이 벌어질 경우에도 스위스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yellowapollo@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