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입양인들, 덴마크 정부에 손배소송…"불법입양 알고도 쉬쉬"
"韓입양기관, 부모 있는 아이를 '고아 조작'…덴마크도 묵인"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덴마크의 해외입양 한인들이 과거 덴마크 정부가 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신원을 은폐하며 인권 침해를 저지른 것을 두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3일(현지시간) AFP통신이 보도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소피 란델(52·여, 한국명 강미진)은 세 살 무렵 남동생과 함께 덴마크의 한 부부에게 입양됐다.
입양 서류에는 란델이 남동생을 등에 업고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가 옷에 핀으로 고정된 채 부산의 한 길거리에 버려졌다고 기록됐다. 란델은 45년 동안 자신이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였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란델은 49세가 되던 2022년이 돼서야 한국에 자신의 친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란델의 양부모는 입양 직후 란델이 어린 시절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내용을 20분 분량의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란델은 18세 생일날 양아버지로부터 카세트테이프를 선물 받았지만, 한국어를 완전히 잊어버린 탓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지 언론 TV2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카세트테이프에서 란델은 한국어로 "언니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란델은 2023년 한국을 방문해 친형제자매를 만났고, 자신의 친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육원에 잠시 위탁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양기관이 란델을 친가족의 동의 없이 해외로 강제입양 보낸 것이었다.
란델과 남동생처럼 1970년부터 1989년 사이 한국인 아동 7220명이 덴마크로 입양됐으며,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러나 조사 결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입양기관들은 실종 아동 등 친가족이 있는 아동도 '고아'로 조작해 가족 동의 없이 입양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덴마크 정부는 한국 측 입양기관이 때때로 입양 아동의 신원 정보를 변경한다는 사실을 묵인했다. 덴마크 입양기관들은 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한국 측에 약 5400만 크로네(약 88억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에 지난달 4일 란델을 비롯한 해외입양인 8명은 과거 덴마크 정부가 입양 과정에서 친자 관계를 은폐하고 조사를 소홀히 했다며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덴마크 정부에 25만 크로네(약 41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각각 요구했다. 총액으로는 200만 크로네에 달하는 금액이다.
해외 입양인 지원 단체 '뿌리의집'의 피터 뮐러 공동대표는 "덴마크인으로서 나는 덴마크가 선한 편에 서 있고, 과거 독재 국가였던 한국은 나쁜 편에 서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뮐러 대표는 이어 "하지만 한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있었던 반면, 덴마크는 모든 것을 카펫 밑으로 쓸어 넣어 은폐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지난해 3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과거 아동들의 해외 입양 과정에서 국가의 인권침해가 있었다며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자 구제를 권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대한민국을 대표해 그간 고통받은 해외 입양인과 가족, 그리고 원가정에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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