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승리 확신과 고집, 러시아군 왜곡·과장 보고 때문"
"쿠퍈스크 점령" 보고 3일 뒤 젤렌스키 현장 등장…러 군부 허위보고 반복
트럼프 평화안 거부 배경이기도… "전쟁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협상 가로막아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건 러시아군과 정보기관의 왜곡된 보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서방 정보당국과 전문가들을 인용해 러시아 군부와 정보기관이 전장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푸틴의 입맛에 맞는 '장밋빛 보고서'를 올리는 데 급급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 사상자 수를 부풀리고 러시아의 자원 우위를 강조하면서도 러시아군의 전술적 실패나 손실은 의도적으로 축소해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허위 보고의 대표 사례는 최근 우크라이나 동북부의 전략적 요충지 쿠퍈스크를 둘러싼 공방에서 드러났다.
지난달 말 세르게이 쿠조블레프 러시아군 대장은 푸틴에게 "쿠퍈스크 해방을 완료했다"고 보고했고, 푸틴은 그에게 러시아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불과 3일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쿠퍈스크 진입로 표지판 앞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며 "푸틴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직접 쿠퍈스크에 왔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러시아의 친크렘린 성향 군사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조롱거리가 됐다. 한 블로거는 이 도시를 유명한 양자역학 묘사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빗대 "슈뢰딩거의 쿠퍈스크"라고 비꼬기도 했다.
푸틴을 둘러싼 '정보의 거품'은 일찍이 감지됐다. 2022년 2월 단 며칠 만에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가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오판의 결과였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릇된 보고를 믿고 무리하게 키이우 진격 작전을 지휘했다가 한 달 만에 굴욕적인 퇴각을 해야 했다.
이 같은 허위 보고 체계는 러시아 내부의 안정과 체제 유지를 군사적 성과보다 우선시하는 푸틴의 통치 방식과 맞물려 더 공고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왜곡된 정보는 국제 외교 무대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FT는 지적했다. 서방 관계자들은 푸틴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 협상안을 거부하고 전쟁을 밀어붙이는 배경으로 이 같은 허위 보고를 지목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전문가 키어 자일스는 "러시아의 허위 정보 캠페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에게 '러시아가 빠르게 이기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0월 "러시아인들은 전장에서 실제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양측의 '근본적인 기대치 불일치'가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또한 "러시아로부터 많은 허위 정보가 나오고 있다"며 미국 측에 러시아의 주장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다라 매시콧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푸틴이 막대한 인명 손실에도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유임한 이유를 '예측 가능성'과 '국내 정치 안정'에서 찾았다.
매시콧은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킨다는 최종 목표를 위해 전쟁 시간표를 늘려 잡았다"며 "도네츠크 지역의 남은 부분을 점령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사상자 수는 그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푸틴이 현실과 동떨어진 보고에 근거해 전쟁을 지속하며 수많은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최고 지도자의 오판이 지속되는 한 전쟁의 출구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푸틴은 지난 19일 연말 기자회견에서 "우리 군이 모든 전선에 걸쳐 진격하고 있다"며 "연말까지 새로운 성공을 목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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