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민심 '폭발'…69% "트럼프 무역 합의 반대"

데이터 주권 침해와 식품 안전기준 저하 우려
2000억달러 투자 약속도 부담…'강대국에 굴복' 정서적 반감 커

스위스 국기 앞에 3D 프린터로 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형이 비치돼 있다. (자료사진) 2025.8.4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스위스 정부가 타결한 무역 합의에 대해 스위스 국민 10명 중 7명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여론조사업체 소토모가 지난달 말 9000명 이상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9%는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스위스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데이터 주권 침해 문제였다. 응답자의 80%는 이번 합의에 포함된 '미국으로의 데이터 이전 제한 완화' 조항이 지나치다고 답변했다.

해당 조항은 데이터의 양국 간 이전을 용이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스위스 국민과 기업의 민감한 정보가 미국으로 제약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염소로 세척한 닭'으로 상징되는 미국산 육류 수입 문제도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응답자의 약 3분의 2는 미국산 육류의 무관세 수입에 반대했다.

이번 합의에는 미국산 소고기 500톤, 들소 고기 1000톤, 가금류 1500톤에 대한 무관세 쿼터가 포함됐다. 스위스 국민들은 미국의 낮은 식품위생 기준이 자국에 유입되는 것을 관세 인하의 대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기업들이 2028년 말까지 미국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약속 역시 반감을 사고 있다. 응답자 3분의 2가 이 조항에 반대했다. 스위스 국민들은 이를 일방적인 양보로 여기는 분위기다.

다만 스위스 정부는 이번 합의로 미국이 부과하던 39% 고율 관세가 유럽연합(EU)과 동일한 15% 수준으로 낮아져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기 파르믈랭 스위스 경제부 장관은 "악마와 거래한 게 아니다"라며 합의 내용을 옹호했다.

이런 여론은 스위스인들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토모의 미카엘 헤르만 대표는 "스위스인들은 강대국이 힘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영세 중립국으로서 독립성을 지켜온 역사적 경험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굴복하는 듯한 모양새에 정서적 거부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 무역 합의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 전통에 따라 국민투표에 부쳐질 가능성이 크다. 의회 비준도 거쳐야 하기에 실제 발효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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