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안보의 '구멍' 아일랜드…러 맞선 동맹 국방력에 무임승차

북미~유럽 해저 케이블의 75% 통과하는 '데이터 금맥'
중립 정책에 군비 투자 외면...함정 낡고, 英 방공망 의존

9월 29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한 건물 측면에 아일랜드 국기의 색상이 칠해져 있다. 2025.9.29 ⓒ 로이터=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아일랜드가 유럽 안보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아일랜드가 오랜 군사적 중립 정책을 고수하며 국방 투자를 외면한 결과 광활한 해역과 핵심 기반 시설을 보호할 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러시아 최신예 첩보함 얀타르가 스코틀랜드 인근 해상에서 영국 공군 항공기를 레이저로 조준하는 등 위협적인 활동을 벌이다 포착되는 일이 있었다. 이 첩보함의 다음 행선지가 아일랜드 해역으로 추정됐다.

얀타르함은 해저 케이블의 위치를 탐지하고 파괴할 수 있는 심해 잠수정을 탑재한 것으로 알려져 서방 정보당국의 주요 감시 대상에 올라와 있는 선박이다.

아일랜드가 유럽 안보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된 이유는 이런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FT는 짚었다.

북미와 유럽을 잇는 해저 데이터 케이블의 약 75%가 아일랜드의 광활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통과한다. 이는 전 세계 인터넷 통신량과 하루 13조 달러가 넘는 금융 거래가 오가는 핵심 기반 시설이다.

문제는 아일랜드의 국방력이 이런 위협을 막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2025년 국방 예산은 13억5000만 유로(약 2조3000억 원) 규모로 역대 최대 규모지만 국내총생산(GDP)의 0.24%에 불과해 유럽연합(EU) 27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아일랜드 해군은 총 8척의 함정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인력난 때문에 실제 운용 가능한 함선은 4척에 불과하다. 영공을 감시할 전투기나 레이더 시스템조차 없어 사실상 영국 공군에 방공을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런 국방력 부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오랜 군사 중립 정책이 꼽힌다. 1921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아일랜드는 군사 동맹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고, 이는 국방비 증액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처럼 강력한 자체 방위력을 갖춘 중립국과 달리 아일랜드의 중립은 국방 의무를 회피하는 명분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동맹국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아일랜드가 자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 주는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 허브 역할을 하면서도, 정작 그 기반이 되는 해저 케이블 보호에는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은 2022년 더블린을 방문했을 당시 "누구도 우리 보호망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아일랜드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내년 7월부터 EU 순환의장국이 되는데, 이는 아일랜드의 안보 취약성을 전 세계에 노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요국 정상들이 방문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방공망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프랑스에 대공 미사일을 갖춘 군함 파견을 요청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일랜드는 기밀 정보를 다룰 보안 등급 체계나 통신망이 없어 동맹국이 러시아 함정의 이동 같은 민감한 정보를 제때 공유해 주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FT는 전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아일랜드 정부는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다. 2027년까지 수중 음파 탐지기를 도입하고 연내에 레이더 시스템 계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이다.

에드워드 버크 더블린대 전쟁사학과 조교수는 FT에 "아일랜드는 안보와 방위 문제에서 완전한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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