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헝가리서…트럼프·푸틴 정상회담에 유럽은 '한숨'
'친트럼프·친푸틴' 오르반 총리 "헝가리는 평화의 섬!" 환영
美·러·헝가리 모두 이득이지만 우크라·EU에는 '굴욕'
- 이지예 객원기자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다음 정상회담 장소가 하필이면 친러 성향이 명백한 헝가리로 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과 2시간 넘게 통화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 간 직접 소통은 8월 15일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 이후 두 달 만이자,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17일 백악관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를 마친 뒤 푸틴 대통령과 '생산적 대화'를 했다며 2주 안에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부다페스트를 만남 장소로 제안했고 푸틴이 바로 동의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흔쾌히 환영했다. 그는 엑스(X)에서 "방금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미·러 평화 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라며 "헝가리는 평화의 섬!"이라고 강조했다.
헝가리는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 이후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장소로 급부상했다. 백악관이 부다페스트에서 트럼프·푸틴·젤렌스키 3자 정상회담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꾸준히 나왔다.
극우 성향의 오르반 총리는 유럽의 대표적인 '친트럼프·친푸틴' 정상이다. 2010년부터 15년 넘게 집권 중인 그는 트럼프 집권 1기 때부터 트럼프의 반이민·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을 열렬히 지지했다.
유럽에선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임에도 러시아와 밀착하며 '문제아'로 꼽혔다.
옛 소련권인 헝가리는 에너지 등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EU가 추진하는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다.
유럽 매체 유락티비는 "미·러 정상회담은 헝가리가 EU 내 러시아의 유일한 진짜 친구라는 점을 공고히 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유럽의 노력에 또다시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수년간 거창한 선언과 단편적 제재 논의 끝에 우크라이나 관련 의제를 정하는 쪽은 EU도 프랑스도 독일도 아닌 트럼프와 오르반"이라고 진단했다.
헝가리의 올해 4월 국제형사재판소(ICC) 탈퇴 발표도 미·러 정상회담 장소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 혐의로 ICC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라 ICC 회원국 방문이 부담스럽다.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미·러 정상회담을 보며 아픈 기억을 떠올릴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이곳에서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러시아와 서방의 안전 보장을 받는다는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지만 약속이 처참히 깨졌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헝가리에서 열릴 초강대국 정상회담은 오르반에겐 이득이지만 EU엔 굴욕"이라며 "미·러 평화 정상회담이라는 선물은 그의 충성심에 대한 보상이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트럼프의 핵심 기조)의 세계화를 북돋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z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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