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북한군 포로 "우리가 얻는 건 없어…오직 명령에 참전"
"러시아 극동서 훈련 후 전장 이동…총 맞고 자결 생각했지만 정신 잃어"
"한국이 우크라 도와 싸우고 있다는 말에 실전 경험 기대하며 참전"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우크라이나군의 전쟁 포로가 된 북한군이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병된 전쟁의 실체를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우크라이나를 돕는 남한군과 싸우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참전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서 싸우다 생포된 뒤 우크라이나 키이우 수용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북한군 포로 백 모 씨(21)와 리 모 씨(26)의 인터뷰를 단독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달 9일 교전 지역인 쿠르스크에서 생포됐으며, 모두 북한의 대외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 소속 병사다.
17세에 정찰총국 특수부대에 징집된 백 씨는 의사인 아버지와 판매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로, 유복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영어도 배웠다. 학교에서는 '러시아는 동맹'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또 백 씨는 자신과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이 엄격하게 검열한 인트라넷에만 연결할 수 있었다.
백 씨는 자신이 러시아에 배치된 건 사전예고 없이 이뤄진 일이라고 증언했다. 상관에게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못했고, 그저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받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기차를 타고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러시아 군복과 러시아 군인 신분증을 받았다. 백 씨는 "러시아에 갈 줄은 몰랐다"며 "도착해서야 (러시아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백 씨는 러시아에서 방탄복과 돌격소총을 받고 곧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북한에서 받았던 군사훈련과 비슷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드론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비행기, 기차, 버스를 타고 며칠 동안 쿠르스크까지 이동한 후, 백 씨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근처에 도착했다. 전선에서 멀지 않은 벙커에 즉시 배치됐고, 그제야 자신이 '진짜' 전쟁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백 씨는 "나는 전쟁에 대해 들어본 적만 있을 뿐이었다"며 "실제로 전쟁에 참여하니 현실감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에게 "당신은 고통스러운 희생과 값비싼 전투의 즐거운 승리를 경험했다. 진정한 동지애와 엄숙한 애국심"이라며 독려했지만, 실제 전투는 달랐다.
백 씨가 속한 부대는 전장에서 포격과 드론 공격을 받았고, 백 씨는 동료들이 숨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이후 돌연 땅에 쓰러진 뒤에야 자기 다리에도 파편이 박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순간 백 씨가 생각한 건 '자결'이었지만, 이내 의식을 잃고 우크라이나군에게 잡혔다.
정찰총국에서 저격수였던 리 씨도 북한에 있을 때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고, 여행도 꿈꿨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자신의 상관으로부터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와 싸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실전 경험을 기대하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리 씨는 "나는 러시아가 내 조국인 것처럼 싸웠다"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리 씨는 백 씨와 같은 날 생포됐다. 우크라이나 진지를 공격하기 위해 파견된 3인조 분대의 유일한 생존자다. 리 씨는 팔과 턱에 총을 맞은 뒤 정신을 잃었다. 그의 옆에는 5명이 넘는 동료 북한군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
이들은 포로로서 북한에 돌아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북한은 전쟁 포로를 배신자로 간주한다.
리 씨는 지난 19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 외교부도 북한군은 헌법상 우리 국민인 만큼 귀순 요청 시 우크라이나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WSJ은 우크라이나와 한국 관리들이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백 씨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하다. 백 씨는 우크라이나 수용소에서 한국 TV 드라마가 여러 편 담긴 메모리 카드를 건네받았다. 그는 메모리 카드에 담긴 드라마 중 하나인 '이태원 클라쓰'를 언급하며 모든 사람이 돈을 놓고 다투는 것 같다고 했다.
백 씨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돈을 놓고 싸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에 참여해도 돈을 받지 못한다"며 "우리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명령이기 때문에 싸웠다"고 밝혔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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