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폼페이 최후의 날…그의 뇌는 어떻게 유리로 변했나

수분 많은 인체가 유리로 변한 유일한 사례 주목
고온의 화산가스로 사망한 후 급속히 식은 것으로 추정

폼페이와 함께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사라진 고대 로마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한남성의 유리화된 뇌.(Phys.org 갈무리)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수년 전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머리 일부가 유리로 변한 남성에 대해 그의 사망 원인이 화산쇄설류(용암 조각과 화산 가스가 뒤엉킨 분출물)가 아닌 화산재 구름(화산 폭발로 뿜어지는 화산재 섞인 가스)이었다는 가설이 27일(현지시간) 제기됐다. 보통 화산 폭발로 죽은 이들은 화산쇄설류가 덮어 사망하는 것으로 추론됐는데 뇌 안의 내용물이 유리가 되기 위해서는 화산쇄설류의 온도인 465도보다 더 높은 온도인 화산재 구름에 의한 사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번 연구가 담긴 논문은 27일 출간된 과학 저널인 '사이언티픽리포트'에 실렸다. 이탈리아 화산학자인 기도 지오르다노가 연구를 주도했고, 뇌가 유리화된 남성 유골을 찾아낸 이탈리아 인류학자인 피에르 파올로 페트로네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8년 페트로네가 이끄는 발굴단은 약 2000년 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숨진 한 남성의 시신을 보다가 산산이 부서진 머리뼈에서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최대 1㎝에 달하는 유리 조각들이었는데, 과학자들이 전자현미경으로 유리를 들여다본 결과 뇌와 척수의 신경 세포 등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존된 것을 발견했다.

원래 인체는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렇기에 유리에 보존된 이 로마인의 뇌는 인간이나 동물 조직이 유리가 된 지구상의 유일한 사례였다.

그렇다면 뇌가 유리가 된 이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냐가 문제다. 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뇌도 뜨거운 무엇인가에 녹아 액화됐다가 급속도로 냉각되어야 유리처럼 단단해진다. 고열에 녹는 것 말고도 그 후 화산쇄설류가 닥치기 전 순식간에 식는 절묘한 타이밍이 필요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남성의 뇌는 섭씨 510도 이상에 노출되어야 유리화될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한 유일한 시나리오는 화산쇄설류가 아니라 그전에 방출된 화산재 구름이 남성을 덮쳐서라고 연구는 보았다. 빠르게 사라지기 전, 뜨거운 폭발로 뿜어진 화산재 구름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폼페이를 얇은 화산재층이 덮고 있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화산재 구름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기 때문에 그간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는데, 지오르다노는 2018년 과테말라 후에고 화산 폭발로 사망한 215명 중 일부도 이 현상의 희생자였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특히 이 남성의 뇌만 유리화됐을까. 이 남성은 정확히는 폼페이에서 약간 떨어진, 지중해에 면한 헤르쿨라네움이라는 도시에 있었다. 이 도시도 베수비오 화산으로 사라져 버린 도시지만 화산 폭발에 대응할 시간은 있었다. 이 도시에서 발견된 다른 모든 시신은 생전에 지중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마을 한가운데 침대에 누운 채 도시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연구자들은 이 남성을 콜레기움(로마의 시민 조직) 건물의 수호자로 추정했고 폭발이 일어났을 당시 건물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강한 화산재 구름의 열풍을 속수무책으로 맞았고 어떤 이유로 순식간에 냉각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자들은 이 남성의 사례가 화산재 구름에 의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미래의 화산 폭발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