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장수 총리 vs 스캔들 제조기…명암 극명한 베를루스코니

유람선 가수 전전하다 건설업 대박으로 재벌 등극
방송사 설립 후 미디어 후광으로 총리직 3선 역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17년 6월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진행된 한 TV 토크쇼에 출연한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12일(현지시간)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을 앓아온 그는 산라파엘레 병원에서 두달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건설업과 방송 미디어를 차례로 제패한 뒤 세 번의 총리직을 역임했지만 재임 기간 이탈리아 경제를 추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각종 부정부패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급기야 '붕가붕가 파티'라고 불리는 미성년자 집단 성매매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 총리직을 사임해야 했다. 그럼에도 투병 기간 그를 보러 지지자들이 산라파엘레 병원에 몰려들 정도로 탄탄한 우파 지지층을 확보했다.

1986년 1월20일(현지시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프랑스 사업가 제롬 세이두가 파리의 마리그니 극장에서 곧 개국할 개인 소유 제5 TV 채널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함께 농담을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베를루스코니는 미디어, 광고, 보험, 식료품, 건설 등 거대한 기업 제국을 거느리던 비즈니스맨 출신이다. 1936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진공청소기 영업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나이트클럽, 유람선 등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기도 했다.

1961년 법학 공부를 마친 베를루스코니는 건설회사인 에딜노드를 창립하고 고향에 주택단지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수주해 기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그의 자수성가를 두고 일각에선 마피아 자금 지원설이 거듭 일기도 했지만 그는 일관되게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1973년 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송출한 케이블TV 방송 텔레밀라노 시작으로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 제국인 '미디어셋'을 거느리는 언론 재벌로 거듭난다. 당시 이탈리아법상 케이블 방송은 불법이었지만 규제 완화를 이끌어내며 자신의 사업을 합법화했다. 1990년에는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 제작권도 따내며 정치적 위세도 얻게 됐다.

이에 베를루스코니는 재계의 막대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1993년 '전진이탈리아'(FI)를 창당했다. 그는 이듬해 우파정당들과 연정을 구축해 처음으로 총리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 데뷔 몇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송을 총동원해 '비디오 민주주의'를 열었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축구클럽인 AC밀란을 후원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차지하게 한 배경도 그를 스타 정치인으로 이끌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전후 최초로 이탈리아 우파정권을 수립했지만 탈세혐의로 인한 연정의 붕괴로 7개월만에 총리직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스스로를 좌파가 주도한 사법 박해의 희생자라고 주장했고 결국 2001년 총선에서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하게 됐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08년 5월8일(현지시간) 첫 내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20006년 총선 패배로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2년 뒤 우파 연정을 꾸리며 총리실로 다시 복귀했다. 그럼에도 베를루스코니는 집권 내내 부패와 탈세, 회계조작,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가 끊이지 않았고 생전 최소 7건의 형사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베를루스코니는 세번째 재임 기간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그와의 악수를 거부할 정도였다. 또 청년실업률이 30~40%대까지 치솟는 등 이탈리아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급기야 2011년 이탈리아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126%까지 늘어나면서 경제위기가 촉발됐고 베를루스코니는 결국 사임했다.

특히 그는 성추문을 빼놓고 얘기할 것이 없는 정치인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는 2010년 총리 재임 중 자신의 호화 별장에서 배우, 쇼걸 등 젊은 여성들을 모아놓고 일명 '붕가붕가 파티'로 불리는 섹스 파티를 수차례 열어 논란을 빚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모로코 출신 댄서 '루비'에게 수천유로를 건네고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2013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대법원은 베를루스코니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05년 11월17일 튀르키예 삼순 인근 두루수에 있는 보타스 가스저장시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막말 논란도 베를루스코니를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그는 유럽 하원의원을 나치에 비유하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향해 '햇볕에 그을린 사람'이라고 거론하기도 했다. 또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와 장기 집권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서방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퇴임 이후에도 베를루스코니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원로 대접을 받았다. 201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는 두 극우 정당 동맹당, 이탈리아형제당(FD)과 중도 우파연합을 결성해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2020년 총선에서도 이들 우파 연합이 약진해 극우 이탈리아형제당 소속 조르자 멜로니 후보를 총리로 당선시켰다. 로이터는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이탈리아의 기괴한 정치 환경에서 나온 가장 특별한 인물"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형제당 대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진이탈리아당 대표,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대표가 지난 2018년 3월1일(현지시간) 로마 템피오 디 아드리아노에 도착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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