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에어쇼에 비친 글로벌 방산 현주소[동남아시아 TODAY]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편집자주 ...한국에서 '가성비 관광지'와 '저임금 생산기지'로만 여겨지던 동남아시아가 뜨고 있습니다. 높은 잠재력의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미중 패권 경쟁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동남아를 모릅니다. 더욱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웃인 동남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서강대 동아연구소 필자들이 격주로 소개합니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2026년 2월, 싱가포르 창이 전시센터에서 개막한 '싱가포르 에어쇼 2026'은 단순한 항공 전시회를 넘어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기술 혁신의 최전선을 비추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였다. 올해로 10회째이자 출범 20주년을 맞이한 이번 에어쇼는 아시아 최대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라는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자리였으며, 미래 전장의 윤곽과 글로벌 패권 경쟁의 현재를 동시에 드러내며 전략가와 산업 관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싱가포르 에어쇼의 출발은 2008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던 '아시안 에어로스페이스'(Asian Aerospace)가 장소를 옮긴 이후 싱가포르 민간항공청(CAAS)과 국방과학기술청(DSTA)의 협력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 행사는 격년제로 짝수 해마다 개최돼 왔다.

지난 20년 동안 싱가포르 에어쇼 행사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각국 정부 고위 관료와 군 대표단, 글로벌 기업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략과 비즈니스를 동시에 논의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방위산업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세계 3대 에어쇼 가운데 하나로 거론될 만큼 상징성과 영향력을 확보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3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에어쇼 2026'이 개최되고 있는 싱가포르 창이 전시센터. 2026.02.03 ⓒ 로이터=뉴스1

지난 3일부터 오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에어쇼는 열 번째 개최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135개국에서 약 5만 명 이상의 통상 방문객이 찾았고, 5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1000여 개 기업이 참가했으며,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16개 국가관이 설치돼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변화는 '항공'의 경계를 넘어 '우주'로의 확장을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행사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 서밋'(Space Summit 2026)이 신설돼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개최됐고, 비행 시범에는 싱가포르를 비롯해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등 6개국 공군과 에어버스, 코맥(COMAC) 등 상업용 항공기가 참여해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2026 싱가포르 에어쇼는 미래 전장이 '유무인 복합체계'와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기술 전시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드론과 인공지능(AI)의 전면적 부상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장의 양상이 급격히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듯 실리콘밸리의 투자를 받은 방산 스타트업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쉴드 AI(Shield AI)와 앤두릴(Anduril) 등 미국의 차세대 방산 기업들은 GPS 교란 환경에서도 임무 수행이 가능한 자율 비행 드론과 유인 전투기를 보조하는 개념의 무인기를 선보이며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들은 기존의 미 국방부 중심 사업을 넘어 대만, 일본, 필리핀 등 안보 위협을 체감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정찰과 타격용 드론 수출을 적극 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3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에어쇼 2026'이 개최되고 있는 싱가포르 창이 전시센터에서 사람들이 미국의 차세대 방산 기업인 '쉴드 AI'(Shield AI)의 부스를 지나가고 있다. 2026.02.03 ⓒ 로이터=뉴스1

다영역 작전 개념 역시 방위산업의 전장이 더 이상 육해공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우주와 사이버 공간이 실질적 전장으로 편입되면서 기업들의 방향성 역시 개별 플랫폼이 아닌 통합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과거 분절돼 있던 항공, 지상, 해상, 우주, 사이버 영역은 하나의 작전 개념 아래 묶이고 있었고, 상업용으로 개발된 첨단 기술이 국방 분야로 유입되는 흐름도 한층 뚜렷해졌다. 인공지능, 첨단항공 모빌리티(AAM) 등 민간 기술 기업들이 방산 분야에 진출해 재난 대응과 국방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인 장면이 그 주요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 산업의 부상 또한 중요한 축이었다. 싱가포르 우주기술산업청(OSTIn)과 경제개발청(EDB)의 지원 아래 열린 우주 서밋에서는 위성 기반 감시, 정찰과 통신 역량이 현대 국방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탄소 중립이라는 과제가 항공우주 산업의 또 다른 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기술적 흐름의 이면에는 국제 정치의 미묘한 긴장 또한 흐르고 있었다. 싱가포르가 표방하는 중립적 위치 덕분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다양한 국가의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 공존의 장면은 곧 국제 관계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첨단 전투기와 드론 기술을 통해 압도적 기술 우위를 과시했는데, 특히 호주 공군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라이트닝 II를 에어쇼 사상 처음으로 선보이며 제공권을 과시했다. 미국 드론 업체들은 중국이 참여한 해당 에어쇼에서 대만 해협 등에서의 중국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아시아 국가들에 대량의 자폭 드론과 정찰 자산을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은 자국산 여객기 C919와 군용기 시범 비행을 통해 상업·군사 양면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직접 참가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말레이시아 공군의 Su-30MKM 비행 시범을 통해 여전히 현역 무기 체계로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가자 지구 전쟁 이후 유럽 무대에서 배제됐던 이스라엘 방산 기업들이 싱가포르 무대에 복귀한 장면 또한 아시아 시장의 실리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과정에서 싱가포르는 단순한 개최국을 넘어 항공우주 산업의 전략적 허브로 도약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지정학적 중립성을 활용해 미중 양측 기업을 모두 유치하고, 우주 서밋을 통해 아시아 태평양 우주 산업 논의를 주도하려는 모습은 허브형 국가로서의 싱가포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었다. 현지 방산 기업인 ST 엔지니어링이 글로벌 AI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자율주행과 항공 정비 분야의 기술 생태계를 확장하는 장면 역시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한국에도 이번 에어쇼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수성하고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무대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FA-50 경공격기, KF-21 차세대 전투기, 수리온 헬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유무인 복합체계와 AI 조종사 기술을 통해 미래 전장 설루션을 제시했다. 인도네시아 공군의 '주피터' 곡예비행팀이 한국산 KT-1B 훈련기로 비행 시범을 선보인 장면은 제3국이 한국 항공기의 성능을 직접 입증해 보인 상징적 홍보 효과로 평가됐다.

3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에어쇼 2026'이 개최되고 있는 싱가포르 창이 전시센터에서 한국군 관계자들이 중국 군용기 개발회사인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의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6.02.03 ⓒ 로이터=뉴스1

2026 싱가포르 에어쇼가 남긴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미래 전장이 AI 기반 자율성, 우주 영역으로의 확장, 소모성 무인 체계의 공급망 확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글로벌 안보의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에 아시아·태평양은 전략적 요충지를 넘어 고도의 민감성을 지닌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그 민감성의 이면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살상 수단을 전시해야 하는 방위산업의 근원적 아이러니가 놓여 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기들이 거대한 비즈니스의 대상이 되는 장면은 억지력이라는 명분과 이윤이라는 현실이 교차하는 국제정치의 이중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번 에어쇼는 첨단 기술의 진보를 축하하는 비즈니스 축제이면서도 인류의 안전이 역설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에 기대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상징적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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