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싱가포르의 상징이었던 고양이의 운명 [동남아시아 TODAY]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공동체는 언제나 상징을 원한다. 전제군주 시대에는 다양한 상징이 왕이나 황제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통치 권력의 정당성과 신격화를 부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도 상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통합과 연대, 그리고 국가 정체성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특히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된 역사적 경험이 풍부한 국가의 경우 상징이나 전통을 활용해 국민들을 하나로 묶고 국가 체제의 역사적 정당성을 구축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역사 경험과 문화유산이 곧 상징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이러한 조건을 가진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후반 이후 새롭게 탄생한 국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짧은 역사와 복합적인 사회 구성으로 인해 상징과 전통을 새롭게 창출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공동체성을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싱가포르가 그 대표적 케이스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독립한 싱가포르는 이제 막 60년의 역사를 지닌, 비교적 젊은 국가다. 130여년간 영국 식민지 시기를 거쳤지만, 그 이전에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 공동체를 형성한 경험이 없는, 말 그대로 새롭게 만들어진 국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다종족 집단을 어떻게 하나의 민족으로 묶는가'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국가의 정체성과 소속감, 애국심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싱가포르다.

독립 이후 싱가포르는 다양한 제도와 장치를 통해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형성하려 노력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상징'이 인위적으로 창출되고 활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잘 알려진 '멀라이언'(Merlion)이다. 사자의 상체와 물고기의 하체를 가진 멀라이언은 물을 뿜는 대형 동상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기능한다. 국명 '싱가푸라'(Singapura)가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를 뜻하는 만큼 육상의 사자와 해양의 물고기를 결합한 멀라이언은 국가를 상징하는 데 적합한 이미지였다.

지금은 거의 잊혔지만, 멀라이언 외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보'로 불리며 상징으로 활용된 동물이 있었으니 바로 '쿠친타'(Kucinta) 또는 '싱가푸라'(Singapura)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쿠친타, 싱가푸라 고양이. (출처=위키미디어 커먼스)

보통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멤버십을 부여하거나 동질성을 심어주기 위해, 혹은 그들을 하나로 결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근현대 시기 자주 사용되는 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혹은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상징'이다. 그 상징은 주로 역사적 유물이나 인물, 혹은 애국심을 차오르게 하는 스포츠 스타, 연예계 스타 등의 얼굴로 국가의 공동체성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요한 상징이 동식물이다. 한국의 진돗개나 풍산개와 같은 토종 혹은 토종이라고 믿어지는 견종이 국가 정책으로 육성되고 품종이 개량되는, 심지어는 그 혈통의 순수성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그 대표적 예다.

과거 1990년대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 간 진돗개가 수개월에 걸쳐 진도의 옛 주인집으로 피골이 상접한 채 찾아왔다는 스토리가 감동적으로 포장돼 알려지고, 광고에 쓰인 예도 있다. 그런 예상치 못한 사고가 겹치면서 진돗개는 한국을 상징하며 영특하고 하나의 주인만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견종으로 자리잡게 된다. 아키라, 요크셔테리어 등 각종 테리어 종류, 푸들, 차우차우, 페키니즈 등 그런 예는 세계 각국에 다양하다.

한때 싱가포르의 살아있는 국보라 불렸던 '싱가푸라' 고양이 역시 그런 비슷한 역사가 있다. 짧은 털과 바짝 솟은 큰 귀, 동그란 눈, 옅은 아이보리색과 고동색 줄무늬로 대표되는 두 종류의 털색, 먹물에 콕 찍은 것 같은 꼬리 끝 검은 점 등의 외모를 가진 싱가푸라는 한때 기네스북 등록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고양이(1.8~2.7㎏)로 불렸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고양이 품종 가운데 하나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싱가포르가 원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게 정확하지는 않다. 처음 싱가푸라라는 고양이 품종이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미국으로부터다. 1974년 싱가포르에 여행 온 할 메도우와 토미 메도우, 즉 메도우 부부가 싱가포르 거리에서 세계적으로도 처음 보는 품종의 고양이를 발견했다며 세 마리(암컷 2, 수컷 1)를 미국 텍사스로 가져간 것이 그 시작이다.

그리고 1980년 고양이 품종 개량에 관심이 있던 바바라 길버슨에 의해 갈색 얼룩무늬 고양이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함께 개량됐다. 짐작건대 싱가포르 고양이의 털 무늬와 색이 두 가지 종류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번식하면서 1979년 처음으로 국제 고양이 협회(International Cat Association)로부터 '싱가푸라'라는 싱가포르의 말레이 명칭으로 등록됐고, 이후 1981년 가장 공신력 있는 협회 가운데 하나인 미국 기반 고양이애호가협회(Cat Fancier Association)로부터도 하나의 품종으로 받아들여졌다. 1988년 같은 기관으로부터 혈통이 부여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완전히 하나의 독립된 품종으로 공인됐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 국제 공인 토종 고양이를 갖게 된 싱가포르 역시 1990년대 초 싱가포르 관광청 주도로 이 싱가푸라 품종을 국가 마스코트로 활용하려는 작업을 추진하게 된다.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았고, 작고 아담한 사이즈에 희귀종이라는 특성이 맞물리면서 싱가포르의 국가 이미지와 국민 결속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스코트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1차 생산물 관리부와 싱가포르 고양이 클럽의 기록으로 인해 이 메도우 부부가 1974년 싱가포르에 입국했을 때 이미 세 마리의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 온 것으로 밝혀진다. 즉 싱가포르 현지에서 구한 고양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세 마리는 이 부부가 개인적으로 기르던 버마산과 아비시니아산 고양이 6마리 가운데 3마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1974년 입국할 당시 그 이전인 1971년에 남편이 4마리의 동남아시아산 현지 고양이 4마리를 미국으로 밀수한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 싱가포르 현지에서 발견한 것처럼 거짓 진술한 것으로 이후 조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싱가푸라 고양이가 버마산과 아비시니아산 고양이의 혼혈로 개량된 것 같은 외모적 특징을 보이면서 싱가푸라라는 품종 자체가 싱가포르 자체 자연산이 아닌 개량된 품종일 것이라는 의심이 확산됐다. 심지어는 이런 상황을 알게 된 고양이애호가협회에서 싱가푸라의 품종을 자연산이 아닌 만들어진 품종으로 수정할 것을 고려하면서 이 의혹을 해소할 조사가 새롭게 이루어지게 된다.

결론은 고양이애호가협회가 해당 품종의 혈통을 그대로 인정해 줄 것을 약속하면서 마무리됐고, 1991년 싱가푸라는 무사히 관광청의 마스코트가 됐다. 1990년 12월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주최한 싱가푸라 고양이의 애칭 공모(Name the Singapore River Cats)에서 앙 리엔 틴씨가 낸 '쿠친타'(Kucinta)가 선정되면서 현지에서는 쿠친타라고도 불린다. 쿠친타는 말레이어로 고양이를 뜻하는 쿠칭(Kuching)과 사랑을 의미하는 친타(cinta)의 합성어이다.

국가공동체를 대표하고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 즉 내셔널 아이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혈통의 순수성이다. 진짜 - 혹은 그렇다고 믿어지는 로컬 태생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런 순수성을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그 태생에 의문이 있고, 심지어 이후 2007년 연구의 DNA 검사에서도 버마산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로컬의 품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 쿠친타, 싱가푸라 고양이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많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다.

2004년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국경일 특별 전시로 쿠친타를 위한 박람회를 연 이래 한때 싱가포르의 살아있는 국보(living national treasure)로까지 불렸던 쿠친타 품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나 대중적으로 애호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싱가포르강을 따라 아주 자그마한 쿠친타 동상이 구석에 있어 그 흔적이나마 볼 수 있는 것이 전부일 정도다. 종종 SNS나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서 아주 드물게 국가 상징으로서 쿠친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최근에는 길고양이로 여겨지며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경우도 많다.

대신 그 자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 상징물인 멀라이언이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 2018년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선정한 마스코트 역시 멀리(Merli)라는 멀라이언을 친근하게 캐릭터화한 상징이다.

결국 인간의 욕망과 국가의 의도에 의해 마음대로 추앙됐다가 급격하게 멸종돼 사라져 가는 것이 철저히 인간의 기호와 취향에 맞춰 상징화되고 개량된 애완동물의 운명이다. 인간종의 업보가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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