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TODAY] 적과의 동침, 미국 내 동남아시아 이주민들

(서울=뉴스1) 현시내 인하대학교 HK연구교수 =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조지아주에 있는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을 체포·구금한 사건에 대한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한국 기업, 특히 반도체, 조선업, 자동차 업계의 대미 투자 확대에서부터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E-4) 신설 추진 등 2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한미동맹 강화와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진행되던 노력 또한 주춤하게 되어 앞으로의 한미 경제협력의 향방이 모호하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미국의 이민정책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트럼프만큼 직접적으로 이민자에 적대적인 정책을 내세워 가두거나 추방한 사례는 1882년 체스터 A. 아서 대통령이 서명한 '중국인 배척법' 이후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이 법은 폐지되었지만,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렸던 미국의 이미지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1970년 이민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미국으로 이주했던 아시아인 대다수는 일본, 중국, 필리핀, 하와이, 그리고 한국 출신이었다.
1965년 미국이 베트남 내전에 직접 개입하게 되면서 동남아시아 출신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대한다. 특히 미국의 반공주의적 대동남아시아 정책 수행을 지지했던 남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출신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이기 위해, 1975년 미 의회는 '인도차이나 이주 및 난민 지원법'을 통과시킨다. 이 법으로 13만여 명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인이 미국으로 오는 교통비부터 정착 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는 전쟁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이 파병과 폭격을 통해 세 국가의 내전을 국제전으로 확대했음에도 공산화를 막지 못했다는 데에 대해 상징적으로나마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남달랐다. 이에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 이주민 중 동남아시아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1975년 인도차이나 이주 및 난민 지원법을 통과시킬 때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보수파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인도차이나 출신 이주민이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들의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제럴드 포드 행정부는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주자의 문화와 미국 문화의 충돌을 막기 위해 난민 정착지 분산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다수의 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은 개발이 덜 이루어진 외지나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높은 도시 변두리에 정착하게 된다.
1975년 패전 직후 미국으로 건너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민 다수는 공산당의 보복을 두려워했던 고위급 공무원이나 군인들, 그의 가족들이었지만, 이후 고국을 등져야 했던 이들은 삶의 터전 자체를 상실한 난민들이었다. 이들이 경작했던 논과 밭은 네이팜탄 공격에 초토화되어 버렸고, 집과 일터는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1976년 이후 공산당 정권 아래 이전 반공 정권과 협력했다고 의심되어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사유재산을 몰수당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인도차이나에서 탈출하는 난민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대되기 시작한다.
특히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이후 수십만 명의 남베트남인들이 바다를 통해 탈출을 시도해 '보트피플'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렇게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식수와 식량 부족, 해적의 공격 등으로 다시 육지를 밟지 못하거나, 수년간의 사투 끝에 미국에 도착해도 1975년에 도착했던 이들과는 달리 정착 비용이나 취업 등에 대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가난과 불평등은 이렇게 자유와 부의 상징이었던 미국에서도 대물림되었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백인우월주의와 고립주의로의 회귀는 미국 내 14.3%에 달하는 이민자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다. 8월 28일 자 CNN 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7개월간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해 추방당한 이민자가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민세관단속국이 202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시민권자에 대한 체포와 구금을 담당한 '집행 및 제거 작전'(ERO) 팀에 의한 체포는 지속적으로 증대됐다. 특이한 점은 2020년 이전에는 형사 유죄 판결을 받거나 형사 기소가 진행 중인 비시민권자에 대한 체포 및 추방이 다수였던 반면, 2020년 이후부터 이민법 위반 비시민권자에 대한 체포와 추방이 급격히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눈여겨볼 만한 점은 2010년대 이후부터 미국에서 태어난 이주민 자손이라 하더라도 교통신호 위반과 같은 경범죄나 범죄단체 의심 조직 연루 가능성 등의 이유로 부모의 고국으로 추방되는 사례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범죄에 연루된 이주민에 대한 체포 및 추방 비율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2008년 이후 지속된 미국의 경제위기와 실직률 증가, 사회적 혼란의 증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한 불안과 불만이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반감과 증오로 폭발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다수의 이주자와 난민들은 저소득층에 속했고, 정착지 분산 정책에 의해 특정 지역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미국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흑인이나 라틴계 이주민과 함께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파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그란 토리노'(Gran Torino·2008)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라오스 출신 '몽' 이주민 공동체에 대한 묘사에서도 잘 보인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고향에서 탈출해 빈털터리로 미국에 도착해 바닥에서부터 삶을 일궈온 전쟁 난민과 그들의 자손 다수가 여전히 가난하고 불평등한 삶을 힘들게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인종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사회적 고립은 동남아시아 이주민을 불법체류자와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고 있다. 트럼프 이전에도 트럼프는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지금의 한미 경제협력이 맞닥뜨린 위기가 새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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