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 뭉친 '2026 홍명보호', 황태자도 페르소나도 없다 [임성일의 맥]

2014 브라질 월드컵 반면교사, 단단한 과정 밟아
선수단 전체 밸런스 강조…멀리 내다본 '원 팀'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3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브리검 영 대학교 BYU 사우스필드 경기장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대한민국과 엘살바도르의 평가전 전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26.6.4 ⓒ 뉴스1 임세영 기자

(과달라하라=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아이가 걷기 위해서는 일어서려다 넘어지고 위태위태 몇 발자국 옮기다 다시 엉덩방아 찧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다리에 힘이 생기고 균형 감각을 키워야 뛸 수 있고 점프도 가능해진다. 단계 없는,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아파봐야 단단해질 수 있으니 두려워 말고 부딪히고 깨지고 눈물도 흘려보라 조언하지만 정작 실패한 이들에게는 기회가 잘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는 이를 향한 시선은, '낙인 찍힌 자'가 아니라 '성공 확률이 높아진 사람'이어야 한다.

큰 실패를 경험한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무대에 재도전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준비 과정은 12년 전과 다르다. 당시를 반면교사 삼아 지적받은 것들을 꽤 수정했는데,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식 반응이 적잖으니 씁쓸하다. 논란은 만들면 만들어진다. 이제 본격적인 항해에 나서는 배를 괜스레 흔들 필요는 없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북중미 월드컵 첫 경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팀은 현지시간 11일 오후 8시(한국시간 12일 오전 11시)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시에 위치한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체코와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대회 때 지도자로서 첫 월드컵을 경험했다. 당시 최강희 감독이 아시아 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이끌다 전북현대에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본선 티켓을 따낸 뒤 다소 급히 지휘봉을 넘겨받았는데, 1무2패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불명예 퇴진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8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에 위치한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2026.6.9 ⓒ 뉴스1 임세영 기자

2002 월드컵 4강(선수)과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지도자) 등 한국 축구사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순간 중심에 있던 국민 영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는 홍 감독 책임이 크다.

당시 '홍명보호 베스트11은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만 기용한다'는 비판이 많았고 심지어 '의리 축구'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홍 감독은 수용 대신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젊은 지도자의 고집이 틀렸다.

이후 강산이 변하는 시간을 지내면서 지도자 홍명보는 내공을 키웠고 '실패한 홍명보'를 또렷하게 기억하며 다시 월드컵을 준비했다. 그는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주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돌이켜보면 이번 대회만큼 잡음 없는 월드컵 최종 엔트리도 드물다. 팬들도 전문가들도 구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인데, 긴 시간 테스트를 통해 필요한 이들을 모두 점검하며 옥석을 가린 영향이다. 특정 선수에 대한 과한 애정이나 신뢰를 꼬집는 "ㅇㅇㅇ호 황태자'나 'OOO의 페르소나'류의 표현도 볼 수 없다. 현재 대표팀에 소위 '홍명보의 사람'은 없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이 8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에 위치한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26.6.9 ⓒ 뉴스1 임세영 기자

대회가 임박하며 '아직 베스트11이 정해지지 않아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인데 이는 홍 감독이 일관되게 유지한 기조 영향이 크다. 그는 팀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먼저 초점을 맞췄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두 차례 평가전(트리니다드토바고 5-0, 엘살바도르 1-0)에서 홍 감독은 최종명단에 포함된 26명 중 25명을 기용했다. 3명의 골키퍼까지 다 썼다. 출전하지 않은 1명은 수비수 김태현으로, 감기 기운이 있어 무리시키지 않는 차원이었다.

홍 감독은 "우리 선수들 모두 팀이 추구하는 모델을 잘 이해하고 있다. 사전캠프을 통해 선수단 전체의 밸런스를 맞췄다"며 "베이스캠프에서 최종조합을 결정해 집중 훈련할 계획"이라 설명했다. 이 방향성은 옳다. 모두의 희망처럼 멀리 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같은 큰 대회는 11명만 잘한다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될수록 '소수정예'는 한계가 있다.

거의 같은 멤버가 계속 가동된 2022 카타르 월드컵 벤투호가 16강에서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1-4 대패한 것은 브라질이 강했던 탓만은 아니다. 조별리그에 다 쏟아부은 주축들의 체력은 바닥이었고 그들을 대체할 백업들도 마땅치 않았던 영향이 더 크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6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 과달라하라에 위치한 '치바스 베르데 바예' 훈련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피파 커뮤니티 트레이닝(오픈 트레이닝)에서 훈련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6.6.7 ⓒ 뉴스1 임세영 기자

이번 대회부터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토너먼트가 32강부터 시작된다. 팬들이 바라는 16강 이상 오르려면 최소 5경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12~15명으로는 부족하다.

18명 이상 믿을만한 카드를 마련해야 하는데 '2026 홍명보호'는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팀을 만들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출전할 사람은 뻔해'라는 기류는 느껴지지 않는다. 들러리는 없다. 황희찬은 "최고참 (김)승규형부터 '훈련파트너' (강)상윤이까지 모두 똘똘 뭉쳐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홍 감독이 2014년 브라질에서 외친 '원팀'은 2026년 북중미 대회가 더 근접해 보인다. 이제 선수들의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모습이다.

지난 7일 과달라하라 리베라시온 광장에서 만난 콴 씨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아내 그리고 어린 딸과 멕시코 대표팀 녹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그는 "월드컵이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게 아니다. 평소에도 자주 입는다. 대표팀은, 늘 지지 받아야한다"고 했다. 명색이 월드컵인데, 우리도 이럴 땐 마음 모아 같이 뛰었음 싶다.

lastuncle@news1.kr